문화



황석영 "한국 작가라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게 부럽다." "나는 당신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부럽다."

소설가 황석영(71)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79)와 르 클레지오(74)와 나눴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글을 쓴다는 이유로 해외작가들의 부러움을 사왔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역사적 트라우마, 고통이 많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시샘이다.

"군사 정국과 싸우면서 감옥을 세 번 들락거렸다. 누구보다 역사적 상처를 많이 안다. 광주 항쟁 때는 현장에 있었고 그 르포르타주를 발표해 또 감옥에 갔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똑같이 할 테지만, 지금 생각하면 작가로서는 불운했다고 생각한다."

황석영이 8일(이하 현지시간) 런던 얼스코트에서 개막한 2014 런던도서전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문학행사에 참석, 역사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파키스탄 소설가 카밀라 쉠시와 일반 독자 30여명이 함께했다.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사는 것처럼 늘 역사적 중압감에 눌려 살아야 하는 그걸 작품으로 써야 하는 부담이 있다. 가끔 글을 쓰기 위해 한국을 떠나기도 하는데 그 기간 나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분단된 남한으로 돌아가면 '이런 작품을 써야 하지 않느냐, 저런 작품을 써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중압감이 심하다."

달갑지 않은 부러움을 한몸에 받지만, 한국 작가라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작은 나라가 미디어에 강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를 30년 동안 후다닥 해치운 건 문화적인 의욕이 있어서다. 나는 그런 한국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마음이다.

"한국 사람들 내면은 쓰레기 더미 위에 들꽃 핀 것처럼 그렇게 어둡다"면서도 "한국 독자들은 작가가 독자와 시대를 배신 않는 한 끝까지 작가를 사랑한다. 위력 있는 독자가 코리아에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시절을 견디며 달라진 글쓰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젊었을 때는 역사나 사회의 현실을 바꾼다거나 더 직접 행동하는 식으로 글을 썼다면 나이가 들면서 조금 변했다. 조금 물러나면서 이를테면 의사, 신부, 목사, 선생 등 사람과의 관계와 관련해 직접 일하는 사람들처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1989년 방북 이후 삶도 글을 쓰는 자세도 바뀌었다. 그는 1989년 3월 방북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예술원 초청작가로 1991년 11월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체류했다. 이후 1993년 4월 귀국,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 1998년 사면 석방됐다.

"평론가들은 내가 감옥에 있을 때까지 내 문학과 이후 문학을 전·후반기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전반기 문학은 10년 동안 쓴 소설 '장길산' 등 역사와 정치를 전면으로 다룬 소설들이다. 이후에는 세계적, 보편적 현실을 우리 현실에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개인적인 글쓰기의 자세뿐 아니라 작가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변모했다고 봤다. "지금의 문학이 사회,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비관적인 이야기인데 점점 문학의 역할이 사회로부터 좁아진다. 특히 요새 젊은 사람들 문학을 보면 그런 경향을 본다. 인터넷 사회 이후로 작가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10일 런던도서전 문학살롱으로 세계 독자와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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