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법정 장면이 경남 창원의 한 법원에서 일어났다.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증인들이 피고 측 변호인을 향해 2시간 넘게 거칠게 항의했고 해당 변호인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반박했다.
27일 오후 창원지법 마산지원 220호 법정.
회사에 2억원이 넘는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업무상배임)로 구속기소된 LG전자 권모(43) 부장의 두 번째 재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 과거 LG전자 1차 협력업체 대표였던 강모(45)씨를 비롯해 2차 협력업체 대표 김모(45)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강씨는 LG전자 소송 사기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김씨는 수억원의 돈과 거래 물량을 약속 받고 강씨를 상대로 수년간 고소·고발전을 펼쳤던 당사자다.
강씨의 순서로 시작된 증인 심문에서 재판장은 김씨를 잠시 법정 밖에 나가서 대기할 것을 요구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강씨는 증인 선서를 마친 후 검찰 측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약 4000장에 이르는 경찰·검찰 진술조서에 강씨가 직접 진술했는지, 그리고 도장을 본인이 직접 찍었는지 여부를 확인했고 강씨는 이에 대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수천장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의 진술조서는 강씨가 3년에 걸쳐 경찰과 검찰에서 했던 증언을 비롯해 사건 관계자와 대질심문 등을 하며 작성한 내용이었다.
검찰은 재판장과 방청객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번 사건에 대한 핵심 내용과 주요 요지 등을 언급한 후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했다.
검찰은 LG전자가 강씨의 회사 직원들에게 대위변제 형식으로 임금을 지급했는지, 그리고 LG전자가 일부 거래처 대표와 직원들이 강씨로부터 물품 대금이나 월급을 받고도 LG로부터 또 다시 돈을 받았는지(이중지급) 등에 대해 질문했다.
또 이 과정에서 강씨가 대금과 월급을 지급한 것을 알고도 LG 측에서 대금과 월급을 이중으로 지급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강씨는 "저는 과거 LG전자 1차 협력업체 3곳을 운영한 기업인이었다"며 "그러나 2008년 10월 갑자기 LG전자 측에서 거래 물량을 중단하면서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게 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LG 측에서 거래 중단을 통보한 후 회사에 있던 제품 생산기기들을 동의도 없이 가져가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며 "그리고 물품 대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거나 임금이 체불된 직원들에게 월급을 대신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장 3곳 중 2곳의 직원들에 대한 임금은 연체되지 않았으며 1개 공장에서 일부 직원들이 한 달치 월급을 주지 못했는데 LG 측에서 당시 대위변제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사건 이후 10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 문제를 해결했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또 "일부 거래처와 직원들은 이미 대금이나 월급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LG 측에서 대위변제 명목으로 돈을 이중으로 지급했다"며 "LG 측의 사주를 받아 저를 모함하고 소송을 제기했던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LG전자는 당시 유령회사에 2억5000만원이라는 돈을 지급했고 그 중 5000만원의 대부분이 소송비용으로 변호사 측에 전달됐다"며 "이는 LG전자와 민사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LG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LG 측에서 합의금 25억원을 주고 매달 물량을 주기로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않았다"며 "2008년 이후 18억7000만원이라는 돈을 마련해 대금 지급과 임금 등으로 사용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씨의 변호인은 반대 심문에서 "LG에서 대위변제를 한 것은 맞지만 당시 이중지급 됐다는 것은 피고인이 알지 못했다"며 "회사 내부 품위서에는 거래처에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증인이 유령회사라고 언급한 회사로 서류를 작성한 것은 직원의 실수로 보인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강씨는 "당시 유령회사라고 언급한 업체는 자본금이 없어 LG전자 업력업체 3곳에서 2억원을 빌렸고 LG에서 이를 갚아라며 2억원을 대위변제 형식으로 준 것"이라며 "나머지 5000만원의 대부분은 소송비용으로 사용하라며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증인 심문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재판장은 '증언에 대한 근거가 있냐'며 강씨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강씨는 "LG 측에서 과거 민사소송 당시 제출한 서류를 보면 고유 번호가 입력돼 있는데 이를 확인하면 해당 문건이 회사 내부에서 작성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중지급 내용을 몰랐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답했다.
증인 심문은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재판장의 휴정 선언에 중단됐다.
휴정이 선언된 후 자리를 옮기던 변호인은 방청석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강씨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증인으로 채택된 김씨 역시 4000장에 달하는 진술조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검찰 질문에 답했다.
김씨는 "과거 강씨를 모함하고 무고와 허위 내용으로 고소한 적이 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지난해부터 진실을 밝히게 됐다"며 "돈을 받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사건과 관련해 2억5000만원을 받았고 2억원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데 사용했고 5000만원의 대부분은 과거 저의 사건을 맡았던 현재의 피고 측 변호사에게 수임료로 지불했다"고 말했다.
그는 "LG에서 대위변제 대금이 이중지급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이를 논의하던 자리에 피고 권씨가 함께 있었다"며 "이 모든 내용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인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변호인은 제가 구속된 당시에 '입 다물고 있으면 LG에서 알아서 한다. 절대 경찰과 검찰을 믿지 말고 오직 변호인만 믿으라'고 했다"며 "최근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제출된 허위의 합의서도 변호인 사무실에서 작성했고 변호인이 갖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제가 구속된 상태에서 LG에서 1억5000만원에 대한 합의서를 만들어(법원에 제출했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는데) 냈지만 공증증서를 만들어 제 목을 졸라맸다"고 말했다.
1시간 가량 증인 심문이 진행된 후 검찰 측은 LG에서 확보한 대위변제금 지급 확약서 4장을 영상으로 띄우며 확약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를 변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증인과 피고 측에게 질문했다.
김씨는 "확약서 4개 중 1개를 작성한 것은 알고 있지만 화이트(수정액)로 금액 부분을 지워 수정한 것은 모른다"라며 "이 가운데 1개는 권씨가 변조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머지 2개는 전혀 모르는 서류"라고 말했다.
증인 심문이 끝난 후 피고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로 증인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며 "검찰에서 제출한 서류도 6000장이 넘는데 이번 사건과 연관된 서류는 1000장 정도로 압축할 수 있어 나머지는 제외해 주기 바란다"며 재판장에게 요청했다.
재판장은 "변호인의 입장과 검찰 측의 의견을 반영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며 "검찰 측 입장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러자 검사는 "이번 사건과 연관된 서류 중 빠진 부분이 있다면 추가로 넣도록 하겠다"면서 "비록 사건 기록이 6000장을 넘지만 이 모든 걸 보면 피고 권씨가 왜 LG 측에 업무상배임을 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보였다.
한편 변호인은 재판 시작에 앞서 피고인의 가족과 LG전자 직원을 제외한 일반 방청객과 기자들을 재판장에서 나가도록 해달라며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 재판은 9월8일 오전 10시40분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