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도시 뉴욕. 21세기 초입에 발생한 9.11테러의 끔찍한 상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도시만큼 전 세계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곳도 없다.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미국 경제수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구 800여만 명의 이 거대도시는 동시에 세계 도시들이 팽창하면서 안게 된 갖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맨해튼 그리드', '하이라인파크',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그리니치 빌리지', '트리니티 묘지' 등 오늘날 뉴욕을 풍요롭게 만드는 세계적 명소들은 그 해법과 마찬가지다.
최근 출간된 '시티 오브 뉴욕'(서해문집)은 경관건축가로 활동 중인 최이규씨와 한겨레신문 서울시청 출입기자인 음성원씨가 지난 2008년 뉴욕에서 의기투합해 계획한 일종의 '건축 생태학'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0년 남짓한 세월 속에서 세계적 도시로 성장해온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조망한다.
뉴욕은 19세기 초반부터 이미 백년대계를 바라본 도시계획에 따라 도시의 얼개가 짜였고,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순발력도 보여준다.
도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맨해튼의 유명한 격자망 도로체계에 대해 저자들은 "왕과 왕궁을 중심에 놓고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권력과 부, 밀도와 치안의 정도가 감소되는 중앙과 외곽의 구성에 비해 바둑판 모양의 격자에서는 어디든지 중심이 될 수 있고, 어디든지 외곽이 될 수 있다"고 호평한다.
한때 과자공장으로 쓰였던 '첼시마켓'이 식당 점포 등이 한데 모인 종합 쇼핑몰로 변신한 것에 대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헌신짝처럼 버리지 않고, 도시의 미래로 바꿨다"고 평가한다.
냉동육을 운반하다 용도 폐기된 철로가 30년 만에 공중정원(하이라인파크)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는 민관 협치가 이뤄낼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도시재생'의 모습을 찾아낸다.
마냥 찬사를 바치는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진 대규모 공공주택들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어떠한 고귀한 사회적 목표나 중요한 정책적 협의를 바탕으로 추진된 사업이라 할지라도, 도시 질서를 망각하고 무시하고 억지스럽게 추진되었던 개발의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브롱스횡단고속도로 상부에 세워진 GWB터미널과 브리지아파트의 경우, "어마어마한 트러스 구조의 과도한 지붕, 불필요한 디테일, 지나치게 낮은 천장의 실내 공간, 불합리한 버스의 순환동선, 브로드웨이와 포트워싱턴 애비뉴와의 교차점이면서도 아무런 통과의 경험이나 환영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하는 도시적 맥락의 상실 등은 우울하다 못해 절망적"이라고 날선 비판을 한다.
'뉴욕거리에서 도시건축을 묻다'는 부제와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세계적 도시를 갈망하다 뉴타운 재개발 등으로 인해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서울에 건네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도시계획이란 폴라로이드처럼 즉석에서 후다닥 '작업'하는 게 아니라, 먼 미래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재의 암실에서 천천히 현상해야한고, 책의 행간마다 채워진 뉴욕의 풍경사진들은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