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해수'(뛰어난 사람을 치켜세울 때 네티즌들이 그 이름 앞에 애칭으로 '갓(god)'을 붙임)로 불릴 정도다. 배우 박해수(34)는 대학로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심장'으로 통한다. 연극 '됴화만발'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맥베스' '프랑켄슈타인' '맨프럼어스' 등에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역을 도맡으며 톱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맥베스'에서는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자신의 연기 스승이었던 김소희(45) 연희단거리패 대표와 부부로 호흡을 맞춰 팽팽한 긴장감도 연출했다.
그런 박해수가 연극 '유도소년' 재공연에서 '경찬'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지난해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104%를 기록한 '유도소년'은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경찬은 박해수의 선굵은 캐릭터와 거리감이 있다. 한 때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지만 현재는 슬럼프에 빠진 말썽꾼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박해수는 "초심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라고 눈을 빛냈다.
1997년 서울에서 열린 고교전국체전에서 청춘들의 꿈과 사랑과 우정이 똬리를 튼 이야기다. 단지 추억이 녹아 있는 과거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 때 열심히 살았다는, 열정의 초심을 떠올리게 한다.
박해수 역시 1997년에 고등학생이었다. 극 중 인물들처럼 신해철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HOT'의 '캔디' 'UP'의 '뿌요뿌요' '젝스키스'의 '폼생폼사'를 듣고 '삐삐'를 쳤다. 인문계 고등학교 때 연극반 '방황하는 별들' 멤버였던 그는 알퐁스 도데의 '별'에 출연(박해수와 기자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그는 학창시절에도 인기가 많았다)하면서 연기의 '맛'을 알았다. 이후 배우의 꿈을 품었고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연극을 정말 즐거워하면서 해왔다. 그런데도 30대 중후반이 되니 고민이 생기더라. 목적성이 생긴 것이다. 초심에 대해 고민할 때 쯤 '유도소년'이 다가왔다. 경찬의 고민과 내 고민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더라."
'유도소년'은 마치 동인제 같은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제작했다. 박해수는 외부인일 수 있다. "초연을 봤을 때 누구하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가 대단하더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박해수는 본래 이 극단 소속인 듯 극 속에서는 물론 평소에도 '하하호호' 어울리는 중이다.
아기자기한 유머가 곳곳에 포진된 '유도소년'은 웃음, 감동이 적절하게 버무러져 관객들이 보기에 편하다. 하지만 배우들에게는 절대 녹록지 않다. 유도선수, 권투선수, 배드민턴 선수가 주인공이라 실제 운동선수처럼 몸을 단련해야 한다. 공연 중에도 배우들은 실제 땀을 흘리고 거친 숨소리를 낸다. 여기에 사투리, 코미디 연기는 기본이다.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흡사 신체극에 가까운 열연을 보여준 박해수는 "'유도소년'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힘들다"고 웃었다. 날을 잡아 열댓명이 되는 배우가 한번에 정형외과를 찾을 정도로 부상이 심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신경 쓸 틈이 없다"고 했다. "부상에 신경을 쓰느라 조심하면 진정 즐기지 못하더라. 사투리 연기도 마찬가지다. 부러 욕심내기 보다 극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극 자체에 몰두했다."
배우 박해수의 가장 큰 장점은 발성. 그래서 선배들 사이에서 고전극에 어울리는 배우라는 칭찬도 자자하다. 신체도 잘 쓰는 그는 그래서 데뷔 때부터 항상 유망주로 손꼽혀왔고 현재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배우는 세가지가 하나가 돼야 한다. 언어와 몸과 감성. 이들이 자연스럽게 조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해수는 연습벌레로 소문 났다. 대본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유도소년'을 통해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유도에서 '업어치기'(상대방 등에 업고 어깨너머로 크게 원을 그리듯이 메치는 기술)를 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듯. "목적성이 생기면서 점점 나를 내려놓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연기가 자연스럽지도 못했다."
너무 정확한 발성도 그 중 하나. "자연스런 무대에는 어울리지 않더라. '유도소년'은 발음이 뭉개져도 크게 상관이 없다. 고전은 주옥 같은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지만 경찬은 매 장면의 감정선을 관객이 느끼게 하는 게 더 맞다. 무대마다 걸맞는 발성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무대에서 주목 받은 배우가 그렇듯 박해수에게도 영화와 TV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상업성이 짙은 뮤지컬계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기회가 오면 여러 장르에 출연하고 싶다. 그래도 마지막은 언제나 연극 무대다. 연극을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영화, 뮤지컬에 출연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유도소년'에서 조르기가 너무 아파 버티지 못하고 매번 포기하는 경찬에게 국가대표 권투선수인 민욱은 말한다. "바벨을 정말 들어올리기 힘들 때 하나 더 들어야 근육이 생긴다. 인생에도 근육이 필요하다"고. 경찬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며 성장한다.
박해수 역시 "경찬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 역시 조금씩 성장하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경찬은 4강전에서 탈락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찬이처럼 4강전에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성장한다. 나 역시 그렇다." 대학로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을 지닌 배우는 그렇게 불을 다시 지피고 있다.
경찬 홍우진·박훈, 민욱 차용학·박성훈·김호진, 화영 정연·박민정·박보경. 연출 이재준, 극작 박경찬. 5월10일까지 아트원씨어터 3관. 러닝타임 115분(인터미션 없음). 4만원.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스토리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