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웅진 "저출산 문제, 이제는 결혼혁명으로 해결할 때"

이웅진 소장·한국결혼문화연구소 =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참가자는 지난 9년 간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만혼’을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여년 간 결혼 연령층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해오면서 작금의 만혼 추세가 지속된다면 10~20년 후 전쟁이라도 날 경우, 노인들이 전장에 나가야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현장을 지키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만혼 추세가 가져올 엄청난 후유증을 경고했다. 또 해결책을 제시해온 입장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만혼 문제는 장·단기적 안목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 결혼은 그 사회의 가치관과 문제의식 등 국민적 정서의 집합체다. 즉, 해당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집약돼 있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에도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만혼은 산업화의 결과다. 산업화는 가족 공동체 붕괴와 핵가족화를 가져왔다.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는 결혼해서 같이 살기 때문에 결혼하는 데 큰 돈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물 한 컵 떠놓고도 결혼이 가능했다.

하지만 분가가 일반화되면서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하느라 결혼비용이 급상승했다. 이에 따라 남편 혼자 벌어서도 생계 유지가 가능했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사회 참여를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결혼비용 상승, 남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현실에서 결혼의 안정성은 위협받게 됐다.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이 같은 수평적인 관계를 남성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은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지난 세대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요즘 결혼은 개개인의 선택으로 바뀌었다. 일례로 1992년도의 조사에서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답변이 30%대였다. 최근에는 그 비율이 60%대로 나타났다. 불과 20여년 만에 ‘결혼은 안 해도 된다’는 인식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 남존여비 관습의 불평등한 결혼생활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인식적 전환이 크게 작용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화는 반세기를 지난 오늘에 이르러 만혼과 맞물린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재앙으로 나타나 지금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결국 한 세대 이상에 걸쳐 문제가 커졌고 마침내 손을 쓰기 힘든 지경이 된 만큼 해결에도 그에 상당하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만혼 문제의 핵심은 ‘결혼-출산-육아’ 사이클이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는 정책 수립과 더불어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자연스러운 인생의 주기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물량적인 노력 만으로는 안 된다. 지속적인 교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20여년 전 현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3명이 각기 다른 선택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A는 20대 초반에 결혼한 후 아이들을 키워놓고 4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당당하게 살고 있고, B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에 결혼해 40대인 지금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 하고 있으며, C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아예 결혼을 안 했는데 40대 중반인 현재에 와서야 결혼을 고려 중이다.

물론 이 3명의 여성이 모든 여성의 삶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일찍 결혼하면 보다 일찍 출산과 육아를 마무리하고, 보다 긴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고, 보다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 결혼·출산·양육 장려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실효를 거둘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개인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는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결혼학’을 중·고등학교 교과 과목으로 채택,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정책 담당자가 이미 결혼을 했다면 현상에 대해 표피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정책담당자나 이 건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결혼해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의 출산세대는 당장 눈앞의 여러 현실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한국의 위기다. 안보, 경제, 사회 등 전 분야가 흔들리고 있다. 만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혼 문제에 대한 체감도가 높은 현장 전문가들을 네트워크화, 정책 수립과 추진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세대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조급하게 서둘러서 미봉책으로 대응하고 상황이 더 악화되는 지난 시절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된다. 조만간 민간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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