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숙진 "무대디자인 훌륭한 지침서는 대본과 음악"

뮤지컬 '로빈훗'(3월29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은 매끈하다. 이건명, '슈퍼주니어' 규현 등 배우들의 호연, 왕용범 연출·이성준 음악감독 콤비의 솜씨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됐다.

이와 함께 인상적인 건 매 장면을 꽉 채우는 무대다. 로빈 후드가 활약하는 셔우드의 울창한 숲을 비롯해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의 손길이 깃든 무대는 해당 장면과 인물을 잘 살려낸다.

최근 강남에서 만난 서 디자이너는 "무대 디자인의 가장 훌륭한 지침서는 대본과 음악"이라고 말했다.

 '삼총사' '엘리자벳' '프랑켄슈타인' 등을 통해 무대 디자이너로는 이례적으로 관객에게 '서숙진'이라는 브랜드를 알린 그녀지만 "공연마다 큰 부담은 없다. 그냥 작품 자체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내 무대의 어디가 좋았다는 말보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듣기 좋다. 공연은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무대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호흡이 잘 맞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사실 '로빈훗'에서 '셔우드 숲'의 깊이감을 더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절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동선에서 답이 나오지 않더라. 배우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누가 뭐래도 배우가 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맞추는 게 맞다."

 '로빈훗'은 '프랑켄슈타인' '조로' '올슉업' 등을 통해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는 왕용범 연출과 끊임 없는 대화를 통해 완성한 무대다. "'프랑켄슈타인' 때는 손목이 나갈 정도로 디자인 스케치를 많이 해갔다. 왕 연출이 계속 색다른 걸 원해서. 그런 식으로 끝까지 열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왕 연출의 장점이다."

서 디자이너 역시 만만치 않다. 무대미술은 예술, 공학, 인문학이 총망라된 작업이다. 작품의 맥락을 중시하는 서 디자이너 역시 "작품의 뿌리를 찾기 위해 자료를 많이 찾는다. 실존 인물인 황후 엘리자베스를 다룬 뮤지컬 '엘리자벳'의 경우 그녀에 관한 삶을 다 뒤져봤다"고 했다.

본래 한국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한 서 디자이너는 인테리어 공부를 위해 떠난 이탈리아 유학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탈리아에서 본 공연장의 빈 공간에 매료, 무대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에 강렬하게 빠져들었다"고 떠올렸다.

현지에서 학부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전공은 무대미술. 석사까지 7년 간 이탈리아에서 머물며 내공을 키웠다.

하지만 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무조건 유학을 권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정보가 없었던 시절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쉽게 전문가 과정을 찾을 수 있다. 스칼라 극장, 코벤트 가든 등에 짧은 연수 프로그램이 많더라. 거기서 공부하면서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했다.

한국에서 무대디자이너를 하려면 여기서 오랜기간 경험을 축적시키는 것이 좋다는 판단 때문이다. "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는 질이 다르다. 무대 디자인은 그런 세세한 것도 알아야 하는데 단기간에 쌓일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다"라고 했다. "무작정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지 말고, 작화 같은 세분화된 전문직에 관심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막상 이런 곳에는 인력풀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앞으로 창작 뮤지컬·연극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힘들지만 그 만큼 보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아울러 그간 한국 시스템을 잘 모른다며 고사했던 후배 양성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 디자이너의 차기작은 3월 개막 예정인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지난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애란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나쁜 자석' '클로저'에서 함께 작업한 추민주 연출이 다시 러브콜을 보냈다. "대본이 잘 나왔더라." 철저히 대본 안에서 무대 영감을 얻고자 하는 그의 탐색이 벌써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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