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30주년, 재출간

시인 박노해(57)의 ‘노동의 새벽’이 30년 만에 다시 나왔다. 1984년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가까이 발간된 시집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 오래 못 가도 / 끝내 못 가도 / 어쩔 수 없지 // 탈출할 수만 있다면, /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 (…) 아 그러나 /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 이 질긴 목숨을, / 가난의 멍에를, /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 /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잔을 /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 노동자의 햇새벽이 /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30년 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인쇄는 오랜 인쇄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또 당시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노동의 새벽’에 묶인 42편의 시 가운데 ‘가리봉시장’ ‘지문을 부른다’ ‘시다의 꿈’ ‘진짜 노동자’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등 20여 편은 1980년대 민중가요로 작곡돼 노래의 몸을 입고 울려 퍼졌다.

“많은 강을 건너고 / 많은 산을 넘었다 / 새벽은 이미 왔는가 / 아직 오지 않았는가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부으며 /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 나는 처음 노래했지만 / 노래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 누구의 가슴에나 이미 있었고 / 누구라도 받아쓰지 않으면 안 될 / 우리들 가난한 사랑의 절규였다 //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172쪽, 1만2000원, 느림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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