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희망마저 얼어버린 '인력시장'…"오늘도 공치는 날이다"

"일을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처자식을 볼 면목이 없는데…."

지난 23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4시. 인력사무소 수십 곳이 모여 있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에는 건설현장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용직 근로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한파에 두터운 방한복과 목도리, 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손을 비비거나 발을 동동 굴렸다.

어림잡아 200명 남짓한 일용직 근로자들로 거리 곳곳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와 커피 한 모금으로 애써 강추위를 달래보지만 숨 쉴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은 이들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는 듯,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칼바람이 파고들까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감을 기다리던 이들은 초조한 듯 연신 시계만 쳐다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근로자들을 태우고 일터로 갈 승합차들이 줄지어 들어서자 일을 주선하는 이른바 '반장'이 낡은 쪽지에 적힌 근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해가며 일당이 적힌 명세표를 건네줬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가방을 어깨에 들쳐 맨 채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아직 일을 구하지 못한 근로자들의 부러운 시선이 승합차가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머물렀다.

인력시장이 파하는 새벽 6시께. 일거리를 찾지 못한 근로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쉽게 뜨지 않은 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건설경기가 어렵고 매서운 한파까지 겹치면서 건축현장 일마저 줄어든 탓인지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일부는 무료 급식소에서 주는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웠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 지 5년째라는 김모(56)씨는 "겨울이면 일감이 줄어들기는 하는데 올해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며 "당장 생활비도 없는데 공치는 날이 너무 많아서 먹고 살기가 정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해진다고 하소연했다.

이달에 두 번 밖에 일을 못한 한모(43)씨는 "건설현장에 중국동포들이 너무 많아져서 해가 갈수록 일자리를 구하는 게 힘들고, 임금도 형편없다"며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될 지경"이라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일을 구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일할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난감하고 미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일자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슬금슬금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경기 불황과 매서운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새벽 인력시장. 일용직 근로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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