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상증)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반년간 학술지 ‘기억과 전망’ 2014년 겨울호(통권 31호)를 발간했다. 논문 3편, 인물탐구 1편, 회고 1편, 서평 2편 등 모두 7편의 글을 실었다.
김은하(경희대)는 개발독재기 베트남전 소설 분석을 통해 남성성 획득이라는 ‘로망스’와 더불어 용병의 ‘멜랑콜리아’를 다뤘다. 황석영의 초기 단편과 박영한의 장편 ‘머나먼 쏭바강’이 개발독재기에 미디어에서 참전용사의 무용담을 남성성으로 표상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청춘과 젊음의 회고 형식을 빌어 씻을 수 없는 죄에 연루된 개인의 수치의식을 드러냄으로써 베트남전을 비판적으로 재독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장영민(상지대)은 한국과 미국의 외교문서를 통해 지학순 주교의 민주화 운동을 재조명했다. 당사자인 지 주교를 포함해 한국 정부, 천주교계, 그리고 미국 정부를 주요한 관련 행위자로 보고 운동의 전개과정을 체포-양심선언-재판-석방으로 나눴다. 단계별 행위자들의 인식과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지 주교가 악과 불의인 유신체제와의 투쟁에서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려고 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는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지만 보수파의 저항에도 직면했고,미국도 내정불간섭주의를 표방하다 독재에 제동을 걸게 됐다고 분석한다.
김어진(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은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연관시켜 이슬람무장단체 ‘ISIS’의 정치세력화를 분석했다. ISIS의 성장을 근본적으로 두 가지의 산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미·영의 이라크 점령 실패와 수니 아랍 다수를 철저하게 소외시켰던 시아파 정부의 통제력 상실이다. 둘째, 2011년 시리아 반정부 세력에, 아사드 정권이 종파주의적 내전 방식으로 대응했던 일련의 상황은 ISIS가 동부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이를 통해 ISIS는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공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오바마 대통령과 걸프국가들의 ISIS 대응전략의 모순도 다룬다. 이로써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중동의 주요 국가들의 대응이 사태를 안정화하는 데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를 검토한다.
최상명(우석대)은 ‘경제인간화’와 ‘따뜻한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김근태의 정치기획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정리했다. 최상명에 따르면, 김근태는 “정경유착과 재벌독점 해체 등을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도 경쟁위주의 시장시스템과 성장제일주의의 경제정책 운용기조를 따르므로, 신자유주의의 인간 소외의 문제를 치유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집권세력과 시민사회 일각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인간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적 경제운용인 ‘경제인간화’의 문제로 바라보자”고 주장했다.
신동호(경향신문 논설위원)는 구술을 통해 6·3항쟁을 재구성했다. 내년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6·3항쟁이 굴욕적인 대일외교에 대한 반대로 1964년 3월 촉발돼 1965년 9월까지 약 532일간 진행되면서 향후 민주화운동에 서도 결정적인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서 이렇게 ‘사건’으로 기록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물밑에서는 어떤 사회관계와 정치활동이 빙산의 몸통을 이루고 있는지를 당시의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병천(강원대)은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에 대해 매우 시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주류 시장경제학의 분배론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가지면서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특유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개혁적 대안도 제시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민주적 지향을 가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피케티가 세계적으로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법을 설명했다면, 평자는 ‘한국스타일의 세습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실천적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부여돼 있음을 상기시킨다.
권진욱(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은 일본의 현대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운동을 제시한 ‘사회를 바꾸려면’(오구마 에이지)을 비평했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전반적인 기능부전에 빠진 일본사회, 그리고 후쿠시마사태 이후 변모하는 일본의 사회운동 경험은, 한국사회에서도 어쩌면 아주 예측가능한 근미래이기도 하고 이미 경험한 근과거일 수 있다. 오구마 에이지의 여러 가지 논의를 통해 일본사회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한국사회의 전망을 끌어냄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이처럼 현장과 학계를 가로지르는 지성의 진솔한 기록으로서의 대중적인 사회운동사상서가 출현하기를 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