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홍명희문학제 '괴산·충북 다 떠났다'…파주서 열려

보훈단체 반대로 고향 괴산서 퇴출

장편역사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1888~1968)의 정신을 기리고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홍명희문학제'가 그의 고향 괴산과 충북에서 떠났다.

충북민예총과 사계절출판사는 올해 19회 홍명희문학제를 괴산과 충북이 아닌 경기도 파주시에서 개최한다.

홍명희문학제는 지난해 11월2일 괴산군민회관에서 열렸지만 보훈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뉴시스 2013년 11월2일 보도>

당시 행사 주최 측과 보훈단체는 행사 전날 세 가지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문학제 개최에 합의했다.

양측은 ▲홍명희가 북한의 부수상으로 6·25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제에서 공표 ▲문학제에서 6·25전쟁 전사자에 대해 의례 ▲이후 홍명희문학제를 괴산에서 개최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주최 측은 당시 조건부로 행사를 치렀지만 올해는 합의문에 명시한 대로 괴산에서 열지 않는 대신 청주도 아닌 파주에서 열기로 했다.

행사는 다음 달 11일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답사를 시작으로 강영주 상명대 교수의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과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의 '청년 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임꺽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를 주제로 한 학술강연이 마련된다.

이어 소설 낭독, 창작 판소리 '칠두렁가', 평화와 통일의 아리랑 공연이 펼쳐진다.

홍명희문학제는 1996년 11월 청주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후 지난해 18회까지 2002년(7회) 서울 YMCA에서 한 차례 열린 것을 제외하면 괴산(7차례)과 청주(10차례)에서 번갈아 가며 열렸다.

홍명희문학제는 홍명희의 고향인 괴산에 정착하지 않았지만 충북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홍명희문학제가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은 벽초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홍명희는 친일 행적을 한 조부(홍승목)와 경술국치에 비분강개해 자결 순국한 부친(홍범식)의 상반된 생애 사이에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 3재(才)'로 불린 벽초는 소설 '임꺽정'을 저술한 문인이자 언론인이며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결성과 괴산 삼일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홍명희는 이런 공적에도 해방 이후 북한 부수상을 지내면서 남한에서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인식하면서 괴산읍 만세운동기념비에 한때 그의 이름 석 자가 빠지기도 했다.

1998년에는 벽초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가 제월대 광장에 문학비를 세웠으나 문구에 대해 보훈단체가 반발하면서 동판이 철거됐다가 2000년 문구를 일부 수정해 다시 부착하는 곤욕을 치렀다.

2008년에는 괴산군이 '벽초 문학상' 제정 관련 예산 2500만원을 편성했으나 보훈단체 반대로 괴산군의회가 전액 삭감했다.

2009년에는 홍명희문학제에 괴산문화원 등 괴산지역 참여를 전제로 한 예산 1000만원에 대해 보훈단체와 행사 주최 측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역시 군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미술·문학평론가인 채수명 21세기경영연구소장은 지난해 '괴향문화' 21집에 실은 '벽초 홍명희에 관한 종합·입체적 분석 평가와 교훈'에서 "홍명희 학술제는 가능하나 아직 문학제는 무리"라며 "남북이 대치하는 한 교육 차원에서 심각한 정체성 문제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채 소장은 그러면서도 "홍명희의 민족적 중도론을 시대 정신에 맞게 한민족의 숙원사업인 남북통일을 위한 작은 밀알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충북민예총 관계자는 "홍명희문학제를 올해 파주에서 열지만 계속 외지에서 개최하진 않을 것"이라며 "문학제 20주년인 내년엔 충북에서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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