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간 흙과 함께해온 도예가 신상호(67)가 처음으로 상업화랑에 들여놨다.
12일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2길 예화랑에서 최근작인 ‘민화’ 시리즈와 ‘서피스 앤드 비욘드(Surface 'n beyond)’ 작업을 소개한다. 1995년 아프리카에 빠져 살다가 시작한 ‘아프리카의 꿈(Dream of Africa)’의 연장선에서 작업한 동물 초상도 있다.
전시장 2층 한쪽 벽면은 12간지를 소재로 작품으로 빼곡하다. 동물은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그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인간의 초상화처럼 다양한 얼굴을 한 동물 시리즈는 입체로 표현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동물을 화판에 그려봤는데, 캔버스에 그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전공인 흙으로 작업을 해봤다”며 “부조형태로 흙 판 위에 다양한 색의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 만들다 보니 12간지가 돼버렸다”고 했다.
앞면과 뒷면은 다른 패턴으로 구성된 ‘민화’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양면이 달라 하나의 두 가지의 효과를 내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이번 전시와 18일부터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릴 전시 이후에는 볼 수 없다.
그는 “12간지와 민화시리즈는 예화랑과 이화익갤러리 전시가 끝나면 더는 세상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가 평생 이어갈 작품은 수묵의 멋을 보여주는 ‘서피스 앤드 비욘드’ 작업이다. 1층 벽면에 걸어놓은 이 작품은 오랜 세월 사용된 견고한 창틀과 흙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고온에 구워낸 ‘구운 그림(Fired painting)’을 결합해 탄생했다 그는 이를 “스며드는 작업”이라며 “내가 그리는 게 아니고 불이 그린다”고 표현했다. “내가 그리지만 스며들어 가는 것은 불이 결정하므로 결국, 불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불이 그려낸 도판들은 텁텁하고 두꺼운 색감에서 벗어나 마치 섬유 위에 물감이 얇게 스며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흙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불 속에 넣으면 자화되는데, 어떤 포인트 지점에서 물이 든다.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흘러서 서로 섞인다”며 “그날의 기후와 완전연소냐 불완전 연소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작품은 싫증 나지 않아 좋다고 웃었다. “깊고 맑은 색을 내는 고려청자의 비색은 우러나오는 색이다. 우리가 표면에 일부러 색을 칠해서 나오는 색이 아니어서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다.”
그는 타일을 예로 들며, “타일은 여러 번 변화를 시도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주방이나 화장실밖에 못 쓴 데다가 색도 페인트로 칠한 느낌이어서 쉽게 싫증이 난다”며 “이는 대부분 타일을 고화도가 아닌 저화도에서 대량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건축소재인 창틀을 작품에 이용하며 도자와 건축의 만남의 문을 더욱 확장한 그의 작품들은 10월 8일까지 볼 수 있다. 02-542-5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