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작품에 손대시오, 부쩍 친절해진 미술…한진섭 ‘행복한 조각’

조각가 한진섭(58)의 작품은 ‘편안함’으로 요약된다. 수더분한 손맛과 듬직한 형태미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조각은 관객의 접촉으로 완성된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가 아닌 ‘만져 달라’고 유혹하는 작품이다.

“보통 조각은 섬세하고 위험해서 못 만지게 하는데 그런 개념을 깨보고 싶었다”며 “관람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 작품이 생활 속으로 들어간 이후 관람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방명록에 “고맙다”는 글이 잇따랐다. “파인아트하는 사람들은 ‘작품이 공예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공예는 디자인이며 디자인은 용도가 있다. 그러나 난 과감하게 공예적으로 방향을 틀어봤다. 부담스러웠지만 선배들 입에서 ‘공예적이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진섭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작품을 설치했다. ‘행복한 조각’이란 제목으로 17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조각 50여점과 작품 모형 200여점이 나왔다. 개인전은 2007년 이후 7년 만이다.

신작 ‘붙이는 석조’가 특히 눈길을 끈다. 돌을 쪼아내는 대신 돌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특수재질로 모형을 만든 후 표면에 돌 조각을 붙이고 그 사이를 시멘트로 메꾸는 방식이다. 작품은 숫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0, 영순위’ ‘3, 삼위일체’ ‘5, 마이 갓’ 등의 제목을 통해 유머도 드러낸다.

그는 “숫자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호이자 약속이지만, 절대적은 것은 아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이에게는 무용지물”이라며 “숫자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으며 숫자를 초월할수록 인생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자신의 경기도 안성 작업실 공간도 재현했다. 정과 망치, 그라인더 등 다양한 공구 이미지와 수십 년간 작업해 온 작품 모형, 드로잉 등이 전시됐다. 작품 모형은 실제 작품을 만들기 전 찰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석고를 뜬 것이다. 작업 모습이 담긴 영상도 볼 수 있다.

“성질이 급하거나 신경질적인 사람은 돌 작업 못 한다. 아주 바보 같고 미련한 사람들만 한다”며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조각을 피해 아쉽다”는 마음이다. “작업할 수 있는 공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간도 걸리고 남들도 썩 좋게 봐주지도 않으니 다들 안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돌과 함께한 지 40여년 “이제는 돌과 얘기가 된다”며 웃었다. “돌의 성질을 파악하고 정을 대면 크게 떨어진다. 돌과 싸우려고 하면 내가 진다. 돌과 나와의 호흡, 그런 것들이 재밌다.”

조형적인 고민은 작업하면서 풀린다. “이번에도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도 고민한다. 잠깐 생각하고 마는 게 아니고 종일 생각한다.”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작업할 때”다. “일을 안 하면 불안하다. 집(분당)에서 작업실(안성)까지 40㎞ 정도다. 초기에는 대학 강의도 했는데 이동 시간이 아까워 그만뒀다”는 작가는 “돌과 함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관람객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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