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천주교 청주교구 시복 청원 13위 '어떤 얼굴']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1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리는 124위(남자 100위, 여자 24위) 시복식에서는 이들 순교자 초상화를 한 폭에 담은 걸개그림(200×300㎝)이 내걸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이 걸개그림과 함께 124위의 개별 초상화(28×38㎝)도 완성했다.

초상화는 가톨릭미술가협회 작가 8명이 순교자의 약전과 문헌 자료 등의 순교자 모습, 당시 신분에 따른 복식 등을 토대로 제작했다.

이 초상화를 통해 천주교 청주교구(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가 시복을 청원한 13위의 얼굴도 엿볼 수 있다.

▲원시보 야고보(1730~1799) ▲배관겸 프란치스코(1740~1800) ▲이국승 바오로(1772~1801) ▲김사집 프란치스코(1744~1802) ▲이성례 마리아(1801~1840) ▲오반지 바오로(1813~1866) ▲김원중 스테파노(?~1866) ▲장 토마스(1815~1866) ▲송 베네딕토(1798~1867) ▲송 베드로(1821~1867) ▲이 안나(1841~1867) ▲박경진 프란치스코(1835~1868) ▲오 마르가리타(?~?).

청주 첫 순교자로 꼽히는 원시보 야고보는 환갑이 훌쩍 넘은 평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전 재산을 희사했고 덕행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했다.

배관겸 프란치스코는 원시보가 순교한 지 9개월 만에 같은 청주병영에서 순교했다.

갓(黑笠)을 쓰고 듬직한 체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국승 바오로는 음성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충주로 이주해 살았고 교회 지도층 신자들과 교리를 익히며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혀 충남 공주에서 순교했다.

갓을 쓴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사집 프란치스코는 양반으로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천주교 신앙을 접했다.

충남 해미에서 치도곤 90대를 맞고 청주로 옮겨졌다가 곤장 80대를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초상화는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다.

이성례 마리아는 한국 천주교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사제의 어머니다.

초상화는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오반지 바오로는 1866년 병인박해 때 고향 진천에서 붙잡혀 청주병영으로 끌려가 갖은 고초에도 교회 일을 누설하지 않은 끝에 순교했다.

갓을 쓴 50대 중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김원중 스테파노는 진천 백곡면에서 살면서 돈독한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혔지만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기꺼이 순교했다.

모습은 순량하고 온후한 성품을 잘 표현했다.

장 토마스는 진천 배티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혀 진천관아에 불려갔고 혹독한 문초와 회유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아 청주병영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초상화는 갓을 쓰고 평범한 중년 모습이다.

송 베네딕토는 충주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진천 배티 교우촌으로 이주해 살다가 가족이 모두 붙잡혀 아들 베드로와 손녀, 베드로의 며느리와 아이 등 5명이 한양(서울)으로 끌려가 모두 순교했다.

흰 도포에 갓을 쓴 양반의 모습이다.

송 베드로는 아버지 송 베네딕토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진천 배티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1867년 붙잡혀 한양(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순교했다.

이 안나는 인천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송 베드로의 아들과 혼인을 했고 진천 배티 교우촌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혀 순교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이 안나의 초상화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다.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는 부부다.

부부는 청주에서 살았고 병인박해 때 진천 백곡면으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혔다.

경기도 죽산에서 함께 순교했다.

시복자 초상화는 시복식 후 각 교구에 배포한다.

양업교회연구소장 차기진 루카는 "이번 시복식은 2002년 시성성으로부터 '하느님의 종' 124위에 대한 시복 추진 인준 교령을 받은 지 12년 만에 맞이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경사요 더없는 은총"이라며 "청주교구에서 청원한 13위는 '청주교구 순교 복자 오반지 바오로와 동료 12위'란 이름으로 공경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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