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아요.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꼬집어보고 그랬어요. 그 많은 분 중에 왜 우리가 됐는지…. 이게 말이 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16일 프란치스코(78) 교황의 시복미사에서 예물봉헌을 할 성가정으로 선정된 강지형(58)·김향신(55)씨 부부는 들떠있다. 강·김 부부는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성북동 카페로 몰려든 기자들을 보면서 긴장한 듯했지만, 얼굴은 행복으로 붉게 상기돼 있었다.
강씨 가족이 교황의 시복미사에서 예물봉헌을 할 가정으로 선정됐다는 말을 들은 것은 1주 전이다. 교황 방한준비위원회의 신부에게 예물봉헌을 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들은 "평범한 가톨릭 신자인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 큰일을 맡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신청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카리타스를 통해 20여년 동안 기부를 해왔는데, 그게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라고 밝혔다.
김향신씨는 "성당에서 봉헌함을 들어본 적도 없는 저희에게 들려온 이 소식에 울컥하고,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 즉 한국인 순교자 124인을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예식에는 최대 100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교황 방한 일정 중 가장 큰 행사이며, 경찰 또한 교황 경호의 성패가 이날 행사에 달려있다고 판단할 정도다.
가톨릭 신자에게 교황을 직접 본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 500만명 중 교황의 시복미사에서 예물봉헌 가정으로 뽑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광이다. 가톨릭에서 예물봉헌은 감사와 속죄의 의미가 있다.
강씨 부부의 예물봉헌은 부부가 직접 성채와 성혈을 모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두 사람의 예물봉헌은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다.
김씨는 "세계가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면 좋겠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그만큼 굶주린 사람을 돕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과 모든 분의 건강을 기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씨 부부가 굶주린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20년 이상 한국 카리스타를 통해 기아난민을 위해 기부해왔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매일 첫 테이블 매상을 기부한다. 그리고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에는 하루 전체 매상을 하나님의 몫으로 내놓는다. 1년에 두 번 벼룩시장을 열어 수입 전부를 굶주린 이들을 위해 썼다. 과거에는 한 달에 한 번 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또 1주에 한 번씩은 대학로에서 상설매장을 열어 수입을 전액 기부한다. '아름다운 가게'와 비슷한 형태의 '따뜻한 마을'이라는 가게를 열어 이 수입을 또 내놓고 있다.
두 사람은 유흥복 신부가 아프리카에서 기아난민을 돕는 모습을 본 뒤 감명을 받아 기부를 시작했다.
"적자가 날 때도 있었어요. 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14번 해야 했고, 마지막에 정착한 곳이 이곳 성북동입니다. 저희에게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의 몫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쉬운 일이었어요. 하나님의 몫 외에는 그 돈은 어떤 의미도 없으니까요."
"가정형편이 기부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다"며 "오히려 가난할 때 더 많이 기부했다"고 전했다.
"이번 일이 정말 감사한 게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항상 해왔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왔어요. 다른 분들도 남을 돕는 두려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게 사회에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아난민을 위한 기부 못지 않게 이들이 관심을 둔 것이 바로 성인에 대한 것이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실리 성지를 되살린 사람이 이들 부부다. 꿈에서 계시를 받고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자리다. 이곳이 성지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실리 성지 복원에 큰 공을 세웠다.
김씨는 "이번 시복미사에서 예물봉헌 가정이 된 이유를 굳이 찾자면, 평소 성인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1년 강씨 부부는 아들을 잃었다. 다른 세상으로 간 아들은 성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테이프를 즐겨 들었다. 그 아들의 영향으로 부부는 성인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1남3녀를 두고 있고, 첫째 아들은 가톨릭 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강씨 부부에게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는 성가정으로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싸우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답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