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주 시드니, 비경·레저는 기본이고 이제는 멋진 문화까지

호주 시드니가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목요일에 주급을 받으면 쇼핑하고 술마시고 소소히 도박을 즐기는 것이 시드니의 여가생활이라고 여긴다면, 선입견이다. 호주 최대도시인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주도 시드니를 중심으로 각종 문화행사를 열어 해외로 향하는 호주인들뿐 아니라 외국 인 관광객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호주 여행’하면 광활한 청정 자연과 오세아니아에만 서식하는 신기한 야생동물, 거기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액티비티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이 발발하자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본토에 농축산물을 보급하는 기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짧은 역사와 영미권의 영향 하에 고유문화를 키울만한 풍토가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시드니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 정도 걸리기는 하나 시차가 1시간(서머타임 기간에는 2시간)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시차증을 거의 느끼지 않고 관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총기소지가 불법이어서 치안이 좋은 편이고 맑은 공기와 낮은 인구밀도의 쾌적한 환경, 춥지 않은 온대기후에서 새로운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부활절이 있는 4월은 계절상 가을로 다채로운 이벤트와 함께 관광하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남반구라는 지리적 특성 외에도 유럽인이 처음 발을 들인 록스 지역은 사암으로 이뤄진 도로, 건축물, 초기 정착민 동상 등이 모여 모래색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50여 천막시장에서 초기 이민자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만든 부메랑, 토산품부터 다문화 호주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디자인의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은 38시간,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있는지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여유있고 쾌활하다.

◇이야기 거리 풍부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시드니’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코트걸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철 아치형 다리 시드니 하버브리지와 나란히 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다. 세계3대 미항으로 꼽히는 시드니항을 한결 돋보이게 해주는 오페라하우스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 풍경이기도 하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20여년에 걸친 장기계획으로 건설된 이 공연장은 문화도시 시드니의 초석과 같은 건축물이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호주인들의 문화 콤플렉스를 해소시켜주기도 했다. 설계자인 덴마크 건축가 외른 우트존(1918~2008) 생존시 선정된데다가 20세기에 건설된 몇 안 되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것도 특기할 만하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외에 한국어로도 가이드 투어가 가능하니 예약을 하고 가면 좋다.

이계영씨 등 한국계 가이드들과 한국어 비디오가 오페라하우스의 극적 역사와 놀라운 디자인, 공학적 비결 등을 알려준다. 흰 조개껍질들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10개 흰 지붕은 스웨덴에서 3년간 연구개발한 세라믹 타일로 지어졌는데 100만개가 넘는 광택이 나는 흰색과 무광택의 아이보리 타일들이 어우러져 빛의 방향이나 날씨에 따라 각각 다른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32개국에서 제출된 233개 후보 중 핀란드계 미국인 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미 탈락됐던 이 우트존의 작품이 다시 선택됐다. 노출 콘크리트기법 등 최신 건축기술들을 연구, 도입하면서 1959년 짓기 시작해 1973년에야 개관했다. 투어 중에는 창을 통해 보이는 시드니항의 경치와 예술가들이 실제 연습하고 있는 공연장 내부도 접할 수 있다.

◇호주 대표 감독 배즈 루어먼 원작의 댄스뮤지컬

할리우드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주연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 같은 호주 출신인 세계적 스타 니콜 키드먼을 주연으로 한 ‘물랑루즈’,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명한 영화감독 배즈 루어먼은 호주가 자랑하는 예술인들이다. ‘스트릭틀리 볼룸 더 뮤지컬’은 루어먼의 1992년 장편데뷔작 ‘댄싱 히어로(Strictly Ballroom)’를 뮤지컬로 옮긴 것으로, 부모 모두 볼룸댄서 출신의 루어먼의 춤과 쇼무대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시드니 리릭극장에서 올 3월 새롭게 선보인 이 댄스뮤지컬은 다양한 춤과 음악, 화려한 무대예술과 의상, 연출기법, 코믹한 캐릭터가 어우러져 영어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왈츠, 탱고, 차차, 탭댄스, 룸바, 러시아 민속춤, 스페인 플라밍고 등 각 민족의 전통춤과 각양의 춤을 모두 소화해내는 배우와 댄서들의 실력이 놀랍다.

◇가을의 부활절, 농축산물 대회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

계절이 반대로 흐르는 남반부에서는 부활절이 북반부의 가을에 있는 추수감사절과 시기상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4월 부활절을 전후해 2주간 열리는 호주 최대의 농축산물 전시 행사로 대규모 대회와 경매가 병행된다. 1828년 시작돼 190년간 매해 열려왔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후에는 시드니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된다. ‘로열’은 국왕의 후원을 받는 기관이나 행사에 붙는 명칭이다. 올해는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비가 아들 조지 왕자와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

호주 전역에서 온 농축산·수산물인 1만5000여명이 모인 박람회를 통해 호주의 축산 전통을 체험하며 와인, 맥주, 꿀, 유제품, 각종 식재료와 음식, 가공품을 비롯한 가축과 생산물의 종류와 품질을 한눈에 가늠해볼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해온 호주 농어촌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친절은 덤이다. 매년 90만명이 관람하는데 이중 외국에서 온 관광객은 1만6000명 정도다. 한국에서도 매년 3000~4000명 정도 들른다고 한다.

기간 중 연일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데 양몰이개의 활약, 양털 깎기 경합, 장작패기 대회, 젖소의 우유를 짜 재래식으로 무지방우유, 치즈, 버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이벤트 등이 특히 인기다. 단체로 온 학생들과 유치원생들도 많다. 마이클 콜린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스트 쇼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로 어린이들은 지역 목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있고 호주의 역사도 배울 수 있다”며 “지방과 도시의 만남과 교류라는 의의도 있다”고 자평했다.

하이라이트는 저녁 시간대 스포츠리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로데오 경기다. 뉴질랜드에서 온 원정선수들까지 참여하는 ‘시드니 로열 로데오 시리즈’는 길들여지지 않은 소를 탄 카우보이들의 역동성과 스포츠맨십이 경이롭다. 더불어 매일 밤 호주의 역사를 기리는 세리모니와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올해 ‘오스트렐리아’ 쇼는 2000 시드니올림픽 성화봉송 이벤트 등 다양한 국제행사의 기획과 연출을 해온 다이 헨리 감독이 맡았다. 호주인들의 생활, 역사, 풍경, 음악, 스포츠 무훈, 신기술, 상징물, 영웅, 스타 등을 모형, 대형구와 영상 등을 이용해 1시간 동안 보여주는 의식은 웬만한 올림픽 세리머니 저리 가라다. 게다가 열기가 훅훅 느껴질 정도로 코앞에서 터져오르는 불꽃놀이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카커투섬에서 2년마다 ‘시드니 비엔날레’

시드니만에서 북서쪽으로 12분정도 수상택시나 페리를 타고 나가면 도착하는 카커투 섬에서는 2년에 한번 시드니 비엔날레가 열린다. 머리에 닭벼슬 모양의 깃털이 난 호주산 앵무새인 카커투의 이름을 딴 이 섬에는 영국에서 온 소년소녀 죄수들의 감옥과 배수선소로 쓰이던 낡은 건물들이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2008년부터 시드니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19회째로 전시는 매회 3개월여 동안 계속된다.

홈페이지에서 페리 예약을 하면 7호주달러에 왕복할 수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다. 천장 높고 너른 공장건물들을 활발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전시품을 설치미술로 특화시켰다. 사암으로 이뤄진 섬 절벽, 배 공장의 낡은 잔해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온 최신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각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딱히 미술에 큰 취미가 없더라도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숙박시설에 머물 수도 있고 섬 한 편의 캠핑장에서 야영을 즐길 수도 있다.

◇시드니항에서 벌어지는 한밤의 오페라

3회째를 맞는 ‘한다 오페라 온 시드니 하버’는 3~4월 3주간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 쇼다. 일본계 한다 박사가 세운 비영기리관 예술과문화를위한국제재단(IAFC)의 후원으로 시드니항의 절경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왕립식물원 내 ‘머콰리 부인의 의자’ 부근 반도에 무대가 마련된다. 벤치 모양으로 잘려진 이 사암은 뉴사우스웨일스주지사였던 래클런 머콰리 소장의 부인이 영국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던 자리라고 한다.

올해의 프로그램은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로 미국 해군사관 핑카튼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집안이 몰락해 기녀가 된 15세의 초초상과 결혼했다가 고국에서 백인여성과 다시 결혼하자, 결국 초초상이 자결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초초상, 나비부인 역에는 일본 성악가 오무라 히로미와 함께 한인동포 권혜승이 더블캐스팅돼 눈길을 끌었다. 한양대 음대 졸업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 중 호주동포인 남편을 만나 이민했다. 호주 싱잉 컴피티션 프레스티지어스 오페라 어워드와 MBS 영 퍼포머스 어워드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는 실력파다.

검은 장막 같은 밤하늘과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바다를 활용한 야외무대는 그 자체로 웅장하다. 사다리로 이어진 2층 무대를 오르내리며 2시간 넘게 가극을 주도하는 소프라노의 가창력도 놀랍고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는 신 같은 것은 굉장히 리얼하다. 시드니항에 접한 바다위에 석양을 상징하는 붉은 대형반구를 띄우고 불꽃놀이로 마무리되는 무대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감동을 남긴다.

◇야생 돌고래 크루즈, 낚시대회, 요트대회

시드니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3시간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포트 스티븐이라는 숨은 비경이 나온다. 육지 안쪽으로 깊숙이 파인 작은 만을 이루고 있다. 인근에는 사막과 바다와 숲이 만나는 지역이 있다. 해상공원보호구역과 토마리 국립공원 일대다. 해안지역에 야생 보틀노즈 돌고래가 다수 살고 있어 호주 돌고래 수도로 불린다.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눈앞에서 귀여운 돌고래들이 물 밖으로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5월말~11월중순에는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대형 험프백 고래떼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수영이나 스노클링으로 근접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연보호가 철저한 친환경국가 호주에서는 동물들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넬슨 베이에서 5대의 소형크루즈 선박을 운영하고 있는 탬보이퀸크루즈의 디렉터 재러드 애드리치는 “항만의 속파도로 모래가 쓸려 올라오면 돌고래들이 마사지를 하듯 좋아한다”며 “150여마리의 돌고래가 살고 있는데 이들은 보트에서 나오는 흰물살도 재밌는 놀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어에 숨을 불어넣어 공을 만들어 공놀이를 즐기기도 하는 등 협동해서 살아가는 돌고래들과 함께하는 삶이 즐겁다”고도 전했다.

이곳에서는 매달 다른 행사가 벌어지는데 2~3월에는 남반부에서 가장 큰 규모로 소문난 낚시대회가 올해로 48회를 맞았다. 200척 이상의 배와 1000명에 달하는 낚시꾼이 참가해 보통 팔뚝만한 크기가 넘는 참치, 돔, 도미 등을 낚아 올린다. 4월에 열리는 요트대회도 유명하다. 호주 전역에서 온 다양한 종류의 요트들이 1주간 남태평양 연안에서 빠르기를 다툰다.

◇사구에서 즐기는 모래썰매와 파도 서핑

넬슨베이에서 남서쪽으로 20여분 차를 타고 내려가면 나오는 애너베이는 사구와 바다의 만남으로 또 다른 진경을 이룬다. 호주 내륙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막의 끝자락으로, 다른 한 편에는 빽빽한 숲이 자리잡아 계속 커지는 사막을 막고 있다. 남아공에서 수입해온 노란꽃을 피우는 사막식물 배틀부시는 모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연을 날리며 서핑을 하는 서퍼들, 사막에서는 낙타를 타는 관광객들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높은 모래언덕에서는 모래썰매를 즐기는 아이들의 환호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모래는 입자가 아주 작아 상처 날 염려가 전혀 없다. 습기를 머금은 날은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상주하는 안전요원의 지시에만 따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드로 사구를 미끄러져내려오는 레포츠를 쉬이 즐길 수 있다.

차바퀴가 모래에 빠지기 때문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사륜구동 셔틀을 타고 들어오거나, 자신의 차를 가져올 때는 따로 허가를 받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올 수 있다. 교포사업가 대니얼 조는 “유리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고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으로도 수출되는 질좋은 모래”라며 “이곳의 독특한 풍경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감성이 죽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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