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법 거부권 후폭풍…유승민 사과에도 정국 '경색'

유승민 사과했지만…당청갈등·계파갈등 '계속'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다음날인 26일, 정국은 얼어붙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을 향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갈등 봉합 의지를 보였지만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 사퇴론의 불씨를 이어갔고,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바짝 몸을 낮춘 유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이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한 데 따라 이날 모든 상임위 일정은 진행되지 못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을 향해 사실상 사퇴를 촉구한 박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몸을 바짝 낮췄다.

같은 당 김무성 대표도 전날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경제활성화법을 외면해온 국회에 대해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 맞춰가는 모습을 보였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설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도 없고 있게 하지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당내 친박계 의원들은 여전히 유 원내대표 사퇴론을 제기하며 '부글부글'한 상황이다.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원내대표 등에 대한 책임론이) 일단락됐다고 하는데, 일단락된 것 같지 않다"며 "진정한 리더는 거취를 묻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사실상 유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장우 의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국회법 파동과 그동안 미숙했던 협상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며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다음 주께 의총을 소집해 유 원내대표 사퇴론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일 방침이다. 다음 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다시 제기할 계획이다. 특히 친박 최고위원들의 집단 사퇴 방안이 가능성 높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역시 여전히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쾌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당이 아직 박 대통령의 의중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청와대 내 대체적인 기류다.

이런 가운데,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정부무능에 대한 책임면피용이자, 국민적 질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치졸한 정치이벤트"라고 비난했다.

문 대표는 그러면서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가 현실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라며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촉구했다. 

문 대표는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 추진은 자신들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는 자기배반이자, 청와대 굴복선언"이라며 "새누리당은 입법부의 권능을 포기하고 행정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오히려 귀를 닫고 민생을 배반하고, 국민을 배신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며 "청와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여야 안가리고 국민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메르스와 세월호 사건에선 보이지 않던 박 대통령이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짓밟는 정국에는 얼굴을 드러냈다. 국회를 모욕하고 국민을 공격할 때가 되니 직접 나서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참담하고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새정치연합은 유 원내대표의 이날 사과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유 원내대표를 향해 "정치인으로서 줏대를 지키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또한 "자리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신뢰는 잃었다"면서 "지지를 받으려면 국회의 본래 권한인 입법권을 지키기 위한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무릎 꿇고 반성했지만 자리보전도 위태로운 상황이 안쓰럽다"며 "오늘은 보수 혁신의 깃발이 포말처럼 사라진 한국 정치사의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한 글에서 독일의 산문 작가인 안톤 슈낙의 수필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 철책가를 거니는 그의 무서운 분노, 그의 외로움에 찬 포효, 그의 앞발의 한없는 절망, 이것이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슬프게 한다'는 안톤 슈낙의 슬픔에 이어 오늘은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이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최민희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자'로 낙인찍은 뒤 유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사과했다"며 "사가의 집안싸움도 쉬쉬하는 것이거늘, 이런 류의 '권력형 밀당'을 공개적으로 계속하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천한 유대표가 왜 (사과를 하느냐)?"라고 말했다.

한편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새누리당이 국회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유 원내대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재의결을 요구했으니 국회가 신속하게 재의결에 부쳐 국회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한다"며 "당청관계 문제에 묶여있지 말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국회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