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는 24일까지도 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내부 기류를 감안할 때 25일 국무회의에서의 재의요구안(거부권) 의결로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질문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국회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시각에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앞서 청와대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이 정부에 이송되자 "한 글자를 고쳤다고 우리 입장이 달라질 수는 없다"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정 의장의 중재안은 '정부는 수정·변경을 요구받은 사항을 국회에 검토하여 처리하고'라는 원안의 내용에서 '요구'만 '요청'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도 이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상태다.
여야가 합의로 '정부 시행령에 대한 수정 부분·변경은 강제성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는 한 국회법의 위헌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기류다. 여야 간 완전한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야당이 강제성을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국회가 정부 시행령의 수정까지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배라는 법리학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민생 차원의 문제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회의 과도한 간섭으로 경제활성화 등 정부 정책이 차질을 빚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고스란히 지게된다는 것이다.
여권의 분위기도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정무특보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책무"라며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은 당연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좌장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전날 정 의장을 만나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거부권 행사시 재의에 부치지 말고 법안을 폐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내에서 친박계 의원들은 물론,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재의결은 불가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강한 유감의 뜻을 밝힌 뒤 재의요구안을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되지 않으면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된다. 새누리당 의석이 과반을 넘는 160석인데다 친박계와 지도부의 최근 분위기를 고려하면 재의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그에 맞춰 국회법 개정안 폐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다만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국회법 개정안의 이송일이 지난 15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는 30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가뭄으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거부권 정국'이 펼쳐지는 게 박 대통령으로서도 이로울 게 없는 만큼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여론의 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민 대변인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 의결 여부를 포함한 25일 국무회의 안건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이 나오지 않았다"며 "오늘 오후 늦게나 내일 아침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