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기자]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일부 공기업들이 우리나라 국채와 같은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 우려를 낳고 있다.
통상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은 공기업을 평가할 때 국가신용등급을 적용하는데 이는 파산 전에 정부에서 빚을 갚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채권 발행을 경고한다. 나아가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석유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업은행, 한국수자원공사 등 우리나라 공기업의 최종 신용등급(지난 3월24일 기준)을 Aa2로 책정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채의 신용등급과 같은 수준이다. 공기업 관련 법에 정부가 유사시 결손을 보전할 수 있다거나 51% 이상 절대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암묵적인 지급보증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정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독자 신용등급은 이보다 한참 낮다.
석유공사의 독자 신용등급은 B1으로 최종 신용등급과 11단계 차이를 보였다. LH의 경우 Ba3를 받았는데 이는 최종 등급보다 10단계 낮다.
이외에 산업은행과 수자원공사의 독자 신용등급은 각각 Ba2, Ba1으로 9단계, 8단계 아래다.
당초 이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서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정크본드'(투기등급)에 해당하지만 정부 덕에 안전 자산으로 탈바꿈했다.
해당 공기업들에 대한 재정건전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LH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사업을 운영하면서 부채가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부채 규모는 126조680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254.2%이다.
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은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저유가가 이어진 점도 악재로 작용했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 투자가 위축되면서 해외 자산 합리화 작업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석유공사의 지난해 부채 규모는 18조6449억원으로 전년 대비 5139억원 늘면서 자산(17조5040억원)을 넘어섰다.
광물자원공사의 경우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부실한 해외 자산을 안정적으로 매각하기 위한 한국광해관리공단과의 통폐합이 추진되는 중이다.
공기업 부채는 유사시 정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 부채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전날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규모가 큰 정책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 재원보다 공기업 재원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어 공기업 부채가 비대해진 측면이 있다"며 "전반적으로는 정부 지원 가능성 때문에 상환 능력을 넘어선 범위에서도 쉽게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공기업의 부채 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우해영 기재부 공공정책국장은 "재무 상황이 나빠지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채를 막연히 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LH 통합 이후 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등 공기업 부채에 대해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은 5년마다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기재부와 주무 부처에 제출하고 국회에도 보고하게 돼 있고, 적정 한도 내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