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대회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무대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소치에서의 질주를, 연기를 마지막으로 '선수'라는 이름과 작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치동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점찍은 선수 가운데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이는 바로 '피겨여왕' 김연아(24)다.
피겨 여자 싱글을 지배하던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점(228.56점)을 받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
어릴적부터 올림픽 금메달만 보고 달려오던 김연아는 밴쿠버올림픽을 마치고 은퇴와 선수 생활 연장을 놓고 고민했다.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했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로는 대회에도 나서지 않고 진로를 고민하던 김연아는 지난 2012년 여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라는 새로운 꿈을 찾고 다시 은반 위에 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던 김연아는 "마지막 대회가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라고 은퇴 의사를 확실히 하며 마지막 무대를 준비해왔다.
복귀 이후인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218.31점)을 받으며 우승한 김연아는 지난해 9월 오른 중족골 부상을 당해 2013~2014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에 나서지 못했으나 이후 두 차례 대회에 출전,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1928·1032·1936년)와 옛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1984·1988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올림픽 여자 싱글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는 컨디션만 나쁘지 않으면 충분히 이를 달성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대들보' 이규혁(36·서울시청)도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규혁은 1994년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올림픽에 출전,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010년 밴쿠버대회를 마친 후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던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다시 일어서 소치 무대에 선다.
소치에서 올림픽 메달의 '한'을 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이규혁은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은퇴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바 있다.
해외 선수들 가운데서도 소치를 은퇴 무대로 점찍은 이들이 적지 않다.
유독 피겨스케이팅 스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소치올림픽 피겨 단체전과 남자 싱글에 나서는 러시아의 '피겨황제' 예브게니 플루센코는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플루센코는 당초 부상을 이유로 소치올림픽에서 단체전에만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최근 러시아빙상경기연맹이 플루센코에게 출전권을 주면서 남자 싱글에도 나서게 됐다.
그는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싱글 금메달을, 2010년 밴쿠버대회에서 남자 싱글 은메달을 땄던 선수다.
밴쿠버대회에서 4회전 점프를 한 차례도 뛰지 않은 에반 라이사첵(미국)에게 밀려 금메달을 놓친 플루센코는 피겨 채점 방식을 비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피겨 선수로는 적지 않은 32세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화려한 점프를 자랑하는 플루센코는 패트릭 챈(캐나다)과 함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일본 남녀 피겨의 '간판 스타' 역할을 해온 이들도 소치를 마지막으로 은반 위를 떠난다.
일본 남자 피겨의 '기둥'으로 활약해 온 다카하시 다이스케는 "소치올림픽에서 운동선수로서 나의 경력이 끝날 것"이라며 "후회없이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다카하시는 2010년 밴쿠버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으며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근 매서운 상승세를 보이는 후배 하뉴 유즈루에게 밀린 모양새이지만 다카하시는 챈과 플루센코 못지 않게 강력한 메달 후보다.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로 한국 피겨팬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아사다 마오 역시 소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다.
2005~2006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김연아와 피겨 여자싱글을 양분했던 아사다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에게 밀려 은메달을 딴 후 부진에 늪에 빠졌다.
그러나 2012~2013시즌 두 차례 그랑프리시리즈와 그랑프리파이널을 제패하며 부활을 선언한 아사다는 2013~2014시즌에도 두 차례 그랑프리시리즈에서 모두 200점을 넘기며 정상에 섰다. 그랑프리파이널에서도 204.02점을 획득, 금메달을 수확했다.
아이스댄스 최강자로 활약해온 테사 버츄-스캇 모이어(이상 캐나다)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1997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버츄와 모이어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과 그 해 세계선수권대회,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최강의 커플'로 명성을 떨쳐왔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바이애슬론의 '살아있는 신화' 올레 아이너 뵈른달렌(노르웨이)도 소치에서 전설의 마지막 장을 쓴다.
1994년 릴레함메르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뵈른달렌은 올림픽에서만 11개의 메달(금 6개·은 4개·동 1개)을 목에 건 남자 바이애슬론의 최강자다.
불혹의 나이에 또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는 뵈른달렌은 "무거운 결정을 내렸다. 소치에 참가하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 모든 것을 미뤄놓고 최고의 경기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며 마지막 무대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바이애슬론 여자 15㎞ 개인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토라 베르거(노르웨이) 역시 소치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스키화를 벗겠다고 선언했다.
밴쿠버대회 봅슬레이 남자 4인승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스티븐 홀콤(미국)도 소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전망이다.
2013~2014시즌 남자 2인승 월드컵 랭킹 선두를 질주 중인 홀콤은 소치올림픽에서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