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극 리뷰]무대미학으로 톺아보는 사랑 속살…'스피킹 인 텅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무대 미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랑의 이면을 톺아보는 수작이다.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연기해도 다른 캐릭터로 통용되는 무대 위 가상은 아이러니하게 삶의 사실을 건드린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색깔이 다른데, 다른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다양한 결이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무엇으로 승화된다.

강필석은 유부녀 '제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지역 형사 '레온', '사라'의 상담치료사 '발레리' 실종 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닉'을 연기한다. 김지현은 제인, 발레리의 내담자이자 '닐'의 옛 연인인 사라를 맡았다. 

정문성은 제인의 남편 '피트', 사라의 옛 연인인 닐, 발레리의 남편인 '존'을 담당한다. 전익령은 사라, 레온의 아내이자 피트와 불륜을 저지를 뻔했던 '쏘냐' 역이다. 

레온·피트·쏘냐·제인, 네 인물이 겪은 1막의 불륜은 2·3막의 다른 인물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영향을 준 인물과 영향을 받은 인물이 같은 얼굴이 된다. 

무대라서 이해받을 수 있는 어떤 기시감. 이로 인해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특히 누구나 인식은 했으나, 인정하기를 꺼렸던 사랑에 대한 속성을 까발린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앞서 '프라이드'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등의 연극 역시 한 배우가 여러 역을 연기했는데,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살피는 '스피킹 인 텅스'가 더 농밀하다.

불륜을 저지르기 직전, 레온·피트·쏘냐·제인이 같은 대사를 겹쳐서 말할 때 관객 안에서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 말이 울려 퍼지는데, 서로에게 가닿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가 된다. 부제 '잃어버린 자들의 독백'으로 수렴된다. 

연극 제목은 방언(方言). 우리가 아는 지역 사투리의 그 방언이 아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성령에 힘입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도 못 알아듣는 언어다. 저마다의 기도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다림으로 치환되나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기억으로 결국 기록된다. 불안하게 울리나 받지 않는 또는 받을 수 없는 마지막의 전화벨처럼. 

강필석·김지현은 당연히 제 기량을 발휘하는데, 정문성·전익령은 발견이라 할 만하다. 발성과 대사 전달력, 무엇보다 각기 다른 캐릭터를 맞춤 옷으로 표현한다. 전익령은 섹시하지만 공허한 쏘냐, 어렸을 적 당했던 트라우마로 불안에 시달리는 발레리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연기한다. 

극이 바뀌는 암전마다 클래식 공연의 악장이 끝날 때처럼 관객들이 참았던 헛기침을 쏟아낸다. 그만큼 장면마다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호주 유명 극작가 앤드루 보벨의 작품으로 1996년 초연했다. 이번이 한국 초연이자 아시아 초연이다. '프라이드' 등으로 감각을 인정받은 김동연이 연출한다. 

이승준이 강필석, 김종구가 정문성, 강지원이 전익령, 정운선이 김지현과 같은 역을 연기한다. 7월16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러닝타임 140분(인터미션 20분). 5만원. 수현재컴퍼니. 02-766-6506

무대미학 통한 살피는 사랑의 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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