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봄나들이, 충남보령으로… 남포벼루·석탄박물관·오천항 키조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해응이 ‘연경재 전집’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벼루 모으기를 좋아해서 좋은 것을 많이 모았으나, 우리나라 것으로는 남포 돌 가운데 최상의 백운상석을 따를 것이 없다”고 했다. 벼루는 문방사우(종이, 붓, 벼루, 먹) 가운데 하나로 옛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사용한 필수품이다. 벼루 중에서도 남포벼루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충남 보령의 남포 지방에서 생산되는 돌로 만든 벼루를 남포벼루라 하며, 이는 최고급 벼루의 대명사가 됐다. 보물 제547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 유물 중에는 벼루가 세 개 있는데, 그 중 두 개가 남포벼루다.

최근 벼루를 사용하는 일은 급격히 줄었지만, 남포벼루의 명맥은 이어진다. 남포벼루 제작 기능보유자 김진한 명장의 집안은 3대째 남포벼루를 제작하고 있다. 6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인 김진한 명장은 할아버지 김형수, 아버지 김갑용을 통해 남포벼루 제작기법을 전수받아 가업을 계승했다.

7세 때 공방에 들어가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고 놀면서 장비 다루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고, 아버지를 따라 성주산에 오르며 돌 고르는 안목을 키웠다. 13세 때 정식으로 입문해 60여년 동안 벼루와 함께했다. 대를 이어 전수한 조각 기술에 뛰어난 벼룻돌을 찾아내는 안목, 전통적인 제작 기법이 더해져 김진한 명장이 만드는 남포벼루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평생 한 길을 걸은 노력으로 1987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6호, 1996년 석공예 부문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좋은 벼루는 먹을 갈 때 매끄럽고, 끈적거리지 않아야 한다. 먹이 곱게 갈리고, 글을 쓰면 윤기가 나 오래돼도 변하지 않는다. 묵지(벼루 한쪽에 오목하게 파여 먹물이 모이도록 한 것)에 물을 붓고 열흘이 지나도 마르지 않아야 한다. 뚜껑과 바닥을 부딪치면 경쾌한 쇳소리가 난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 하품 벼루다.

좋은 돌을 사용해야 좋은 벼루를 얻을 수 있기에 노구를 이끌고 직접 산에 올라 원석을 채취한다. 백운상석만 골라 제대로 된 벼루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남포벼루의 재료가 오석이라고 알려졌지만, 김진한 명장은 백운상석이 진짜 남포벼루의 재료라고 말한다. 성주산 중턱에서 채취하는 백운상석은 원석에 흰 구름 문양이 박혔다. 석질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돌결이 윤기와 온기를 고루 갖춰 먹을 갈면 먹이 벼루 바닥에 들러붙는 느낌이 든다.

벼루 하나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두 세 달. 백운상석을 자르고 다듬어 틀을 잡고 용과 학, 거북, 봉황, 사군자, 십장생 등을 조각하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조각할 때는 도안에 의지하지 않는다. 기본 밑그림을 그리더라도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상황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한다. 생각을 틀에 맞춰놓고 손으로 표현하면 결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힘들고 거친 일이지만 김진한 명장은 하나하나 정성을 쏟는다. 그렇게 만든 벼루가 5000여 점이다. 자신이 제작한 남포벼루에 자부심이 있기에 소장자 명단을 작성해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남포벼루의 진가를 확인하고 발길을 옮길 곳은 산과 바다의 여행지다. 산에 위치한 대표 여행지는 보령 석탄박물관이다. 보령 지역은 국내 주요 석탄산지였다. 보령석탄박물관은 충남탄전의 발달 과정과 채굴 장비, 작업 환경 등을 소개하기 위해 1995년 5월18일 문을 열었다. 석탄은 1970~80년대 우리 국민의 주된 연료이자, 근대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160m 모의 갱도에서 탄광 근로자들이 석탄을 캐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실내 전시실에서 모의 갱도를 연결하는 수갱(수직 갱도) 효과 엘리베이터는 어린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시설이다. 램프의 순차적인 점등 방법과 흔들림, 음향, 공기의 흐름 등 특수 효과를 이용해 실제로 지하 400m까지 내려가는 듯한 효과를 준다.

바다로 걸음을 옮기면 보령 8경 가운데 7경인 오천항이 기다린다. 여름철에는 대천이나 무창포해수욕장 등이 인기지만, 봄바람이 불 때는 별미 키조개가 있는 오천항이 좋다. 오천은 자라 오(鰲), 내 천(川)을 쓴다. 오천을 비롯한 천수만 일대의 지형이 자라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다 양면에 있는 산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피해가 없는 천혜의 항구다.

오천항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항구 입구의 충청수영성(사적 501호)에 올라야 한다. 조선 시대에 서해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해 축성한 충청수영성에서는 천수만을 비롯해 오천 일대 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항구의 풍경을 감상한 뒤에는 오천항의 명물 키조개를 맛본다. 키조개는 생김새가 곡식의 검불을 까부르는 키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시커멓고 커다란 키조개 속에는 큼지막한 패주(관자)가 있다. 일본말로는 ‘가이바시라(貝柱)’라고 한다. 패주는 웬만한 조갯살보다 훨씬 크고, 달짝지근하면서도 보드랍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조리법도 다양해서 두툼하게 썰어 회로 먹거나, 버터에 굽기도 한다. 시원한 채소 국물에 살짝 담가 먹는 샤부샤부, 매콤한 볶음도 맛있다.

오천항에서는 ‘머구리’라 불리는 잠수부가 수심 20m 내외 바다에 들어가 모래흙에 수직으로 박힌 키조개를 캔다. 머구리는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 이상 바다 속을 헤매며 키조개를 잡는다. 작업하는 날은 한 달의 절반 정도. 사리 때는 물살이 거세서 작업을 못 하고 조금 때만 작업한다.

오천항에 키조개가 있다면, 천북면에는 굴이 있다. 굴을 맛보기 위해서는 천북굴단지로 가야 한다. 바닷가에 빼곡한 식당이 구이, 찜, 물회, 칼국수 등 다양한 굴 요리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가격은 12㎏ 정도에 3만원으로, 단지 내 모든 식당이 동일하다. 소쿠리에 한 가득 담긴 굴을 불판에 올리면 탁탁 소리를 내며 익는다. 너무 익으면 펑 소리를 내며 굴 껍데기가 사방으로 튀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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