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송지수 기자]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여러 금융사를 전전하며 일명 '메뚜기식'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는 최근 수사를 받고 있는 중에도 새로운 위장 집금계좌를 터서 이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위장계좌를 이용하는 거래소들이 추후 이용자들의 돈만 빼돌리고 문을 닫는 소위 '먹튀'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금융당국도 이들에 대한 단속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전날 자금세탁방지제도를 이행하고 있는 15개 금융 유관기관과 '유관기관 협의회' 제1차 회의를 열고 암호화폐 사업자의 위장계좌, 타인계좌, 집금계좌에 대한 모니터링, 전수조사, 조치 상황을 점검했다.
이에 따르면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24일까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가 의무화되고, 집금계좌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화되면서 금융회사의 타인명의 계좌 및 위장 제휴업체 계좌를 활용해 숨어드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간 은행 실명계좌를 받지 못한 거래소들은 법인 명의의 집금계좌(돈을 거두고 모아두는 목적의 계좌)를 이용해 입금을 처리해 왔다. 거래소 명의 계좌로 이용자가 돈을 보내면, 거래소에서 해당 금액만큼 암호화폐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명확인이 불가능하고 자금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시중은행들이 집금계좌 개설까지 엄격히 제한하면서, 소위 '벌집계좌'를 편법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거래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집계좌란 법인계좌 하나에 여러 개의 고객 개인계좌를 만들어 투자자 돈을 입금받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 실명계좌를 통해 거래 대금을 결제하는 거래소는 '빅4(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 불과하다. 이에 나머지 거래소들 중 일부는 상호금융 및 소규모 금융회사의 계좌를 집금계좌로 운영하거나, 거래소 명의가 아닌 위장계열사, 제휴 법무법인 명의로 집금계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점검 결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를 사용하지 않는 중소규모 거래소들이 금융사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위장계좌, 타인계좌 개설과 중단을 반복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한 은행에서 계좌가 막히면 다른 은행에서 차명으로 위장계좌를 터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위장계열사 명의, 법무법인 명의, 임직원 명의, 상품권 구입을 통한 간접 집금계좌를 운영하는 등 방식은 다양하다.
또 법집행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일부 가상자산사업자는 사업자명을 바꿔 새로운 위장 집금계좌를 만들어 이용한 사례도 포착됐다.
FIU는 1차로 이달 말까지 전체 금융회사 등을 대상으로 가상자산사업자 위장계좌, 타인명의 집금계좌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대응조치를 진행 중이다. 전수조사는 오는 9월까지 매월 진행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위장계좌에 대해서는 거래중단, 공유 등의 조치가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특금법 신고기한 만료일을 앞두고 거래소들이 고객 예치금을 빼돌리거나 사업을 폐쇄하는 등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회사들도 전담인력을 배치해 위장계좌, 타인계좌 등 거래소 영업계좌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적발 즉시 거래를 중지하고 있다. 또 당국은 예치금 횡령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상자산사업자 집금계좌에서 예치금 등 거액이 이체되는 경우, 지체 없이 의심거래(STR)로 FIU에 보고토록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명과 집금계좌명이 다른 경우는 불법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것으로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