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서현정 기자] 쿠팡이 회원탈퇴, 물류센터 화재, 직장 내 괴롭힘 등 3중고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쿠팡은 경기 이천시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촉발된 불매운동·회원탈퇴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쿠팡이츠 갑질 논란과 욱일기 판매로 더욱 확산되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고용노동부 조사가 진행되는 등 안팎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쿠팡 불매·탈퇴운동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경기 이천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국내 직책 사임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수 년 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노동·환경 문제가 얽힌데다 쿠팡의 미흡한 대처가 이어지면서 쿠팡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쿠팡 불매·탈퇴 움직임은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됐다가 실종된 경기 광주소방서 소속 김동식 119구조대장이 화재 발생 사흘째 날이었던 19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된 이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는 '쿠팡 탈퇴' 해쉬태그를 단 게시물이 17만여건의 올라왔다. 트위터 외에도 각종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는 쿠팡 탈퇴 인증샷을 올리는 네티즌들이 여전히 많다.
쿠팡 불매·탈퇴 운동은 단순히 쿠팡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소방관이 숨지는 일이 발생해서가 아니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쿠팡이 보여준 일련의 대처가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게 김 의장의 국내 직책 사임 논란이다. 쿠팡은 17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지 5시간 뒤에 김 의장이 쿠팡 국내 법인 의장·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며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회사 내부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 상황에서 최고 책임자가 국내 직책에서 물러난다는 발표를 하는 게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쿠팡은 이미 지난달 말에 확정된 내용을 이날 발표한 것 뿐이며, 화재 사고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론은 싸늘하게 반응했다.
김 의장의 국내 직책 사퇴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선 김 의장이 배송 기사 과로사 문제 등 쿠팡 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이슈를 회피하기 위해 국내 직책을 내려놓은 거라고 보기도 한다.
김 의장은 지난해 과로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뒤 같은 해 12월 공동대표 이사직을 던진 적이 있다. 쿠팡 물류센터와 외주업체 등에서 노동자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음에도 김 의장은 단 한 번도 직접 사과한 적이 없다.
쿠팡은 올해 초 미국 증권 시장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기업 경영의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사고에 대한 쿠팡의 사과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쿠팡은 사고 발생 32시간이 지난 18일 오후에서야 공식 사과했다. 강한승 쿠팡 대표가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몹시 송구하다. 피해를 입은 많은 분께 사과한다"고 했으나 사과 자체가 너무 늦었고, 쿠팡의 실질적 경영권을 갖고 있는 김 의장이 직접 사과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또한 쿠팡이츠 갑질 논란과 욱일기 관련 제품 판매로 불매·탈퇴 운동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화재로 촉발된 불매·탈퇴 운동에 연이어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부정적인 여론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서울 동작구에서 김밥가게를 운영하며 쿠팡이츠 서비스를 쓰던 한 음식점 점주가 최근 갑질 고객을 응대하고, 쿠팡이츠 고객 센터에 대응하다가 쓰러져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다.
쿠팡이츠는 "일부 이용자의 갑질과 무리한 환불 요구, 악의적 리뷰 등으로 피해를 입은 점주 여러분께 적절한 지원을 해드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쿠팡이츠는 점주 보호 전담 조직을 만들고 전담 상담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상담사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상담 과정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악성 리뷰에 대해 점주가 직접 댓글을 달아 해명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하고 악성 리뷰가 노출이 되지 않게 신고 절차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한 쿠팡은 일본 욱일기(旭日旗) 관련 상품을 판매했다가 논란이 일자 중단했다. 지난 22일 쿠팡 홈페이지에서는 이날 오전까지 욱일기가 그려진 우산과 스티커 등 관련 제품이 판매됐다.
욱일기란 일장기의 태양 문양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군기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전면에 내세우면서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이 됐다.
해당 상품은 모두 해외 배송 상품으로 쿠팡이 자체 판매하는 것이 아닌 오픈마켓 판매자가 등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쿠팡은 "확인 후 즉시 판매 중단 조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용부 인천북부지청은 최근 쿠팡 인천4물류센터와 관련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쿠팡 인천4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근로하던 A씨는 지난 2월 노조 설립을 의논하는 네이버 밴드 대화방에 가입한 뒤 회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며 사측에 공식 절차를 거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 의무는 회사에 있다. 이에 따라 당시 조사를 진행한 쿠팡은 A씨의 신고에 대해 가해자와 면담조사 등을 거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A씨는 지난달 13일 인천북부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본사 조사 권고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기했다. A씨는 현장 관리자로부터 갑작스러운 업무 전환 배치, 사실관계 확인서 작성을 강요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가 진정 관련 조사에 나선 것은 쿠팡 측의 조사 등의 조치가 미흡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진정이 제기된 데 따른 통상적인 절차라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쿠팡 측은 "A씨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사실관계 확인서 작성 강요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쿠팡은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할 수 있도록 윤리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접수된 사안에 대해 조사 후 무관용 원칙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