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을 연상시키는 무대.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는 기타를 잡은 김광석(1964~1996)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작은 찻잔에 꽂은 향 하나 때문인가, 3시간 내내 코끝에는 향 냄새인지 시간의 냄새인지 모를 매캐한 향이 맴돌았다. 가수 이은미가 직접 공수해 온 "귀한 산삼 술"을 받은 작곡가 강승원은 김광석의 사진을 향해 건배했다.
"이 곳에 오면 광석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잘 지내겠지요. 저는 아직도 휴대전화에서 김광석 전화번호 안 지웠어요. 죽을 때까지 안 지우려고요. 걸면 대답할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날에는 광석이가 여기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만큼은 취하고 싶네요."(한동준)
6일은 김광석의 20주기였다. 20년 동안 김광석의 노래를 되새기며 그를 그리고 있는 친구들과 200여 명의 팬들이 한 자리에서 작은 집들이를 열었다. 이들이 모인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생전에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한 곳이다.
"실감이 안 납니다. 벌써 20주기라는 게. '응애'하고 태어났던 아기가 성인이 되는 거잖아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리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 불러주고 찾아줬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박학기)
2008년 학전블루 소극장 마당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진 뒤 김광석추모사업회는 매년 이곳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를 열고 있다.
올해는 82팀이 참가한 예선 심사를 거쳐 13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청소년부터 58년생 아저씨까지, 저 멀리 울산부터 가까운 서울에서까지 장소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김광석의 감성으로 뭉친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김광석씨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홍대 인근에서 그 분을 추모하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가객 프로젝트 밴드), "이렇게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황보람), "어느 순간부터 김광석씨의 노래를 틀면 제 삶도 같이 재생이 되더라고요."(하이미스터메모리)
가족과 함께 참가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른 박장희(58)씨는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사연을 공개해 사람들의 눈물을 뺐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슬픔을 덜어내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1등인 '김광석상'은 '먼지가 되어'를 핑거 기타 주법으로 화려하게 연주한 청소년 트리오 이강호·임형빈·김영소 군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마틴 기타와 함께 '2016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김광석상'의 주인공은 한 팀이었지만 이날의 '김광석 다시 부르기'는 대회도 아니고, 경연도 아니었다. "순위를 매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박학기)는 김광석의 성향처럼 13팀 모두에게 상이 돌아간 잔치였다. 하모니카, 우쿨렐레, 기타 등 작은 부상이 주어졌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김광석의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지원자들에게는 그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상이고 즐거움이었다.
사회를 본 박학기는 "젊은 세대와 후배에게 김광석의 음악을 넘겨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며 "김광석은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수일 것"이라고 했다.
"한때는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눈물 나는 가수였지만 지금은 가수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가수일 겁니다. 데뷔 20년이 아니라 사후 20년이 됐는데 이렇게 뜨겁게 사랑해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박학기)
올해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려 했던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앞으로도 쭉 이어진다. 이날 현장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김광석추모사업회 회장인 가수 김민기는 "이 대회는 아무래도 계속 가야 되지 않나 생각했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김광석재단의 이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를 많이 위로해줘서 감사하고. 후배들이 이렇게 자기 노래하고 그러는 걸 보고 있으면서 김광석이 되게 행복해 할 거에요. 분명히."(한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