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도 이 여자들처럼 되고싶다, 성공한 15인 '워너비 우먼'

"김앤장 변호사로 재직하던 중 한 금융기관에서 조윤선 전 장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멘토로 모시던 원로 변호사에게 자문하면서 조 전 장관은 금융기관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따져본 결과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 원로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의 얘기를 듣고 나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인데 그런 수준으로 생각해서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이후 생각을 고쳐, 내가 그 자리를 맡아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생활을 하 게 될까, 어떤 기분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를 생각하자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걸 경험한 이후부터는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항상 '내가 그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슴이 뛰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기준으로 결정해왔다. 조 전 장관은 그렇게 내린 결정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82쪽)

"해야 할 업무가 있으면 출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직업이 바로 경찰이다. 범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이금형 교수는 주말에 현장 지문 등 감식이 들어오면 경찰청 사무실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사무실 구석이나 복도에서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절단된 신원 미상의 손가락 증거물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보게 됐지만, 이를 일부러 숨기지는 않았다. 사실 책상 주변을 치울 여유도 없었다. 이 교수는 '엄마가 일하는 곳'을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43쪽)

'워너비 우먼'은 여성 리더 15인이 유리천장을 깨고 자기 분야의 1인자가 되기까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은 무엇이었는지 그 생생한 체험담을 담았다. 김선걸·강계만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여성 리더 1호'와 각 업계에서 1인자로 등극한 파워 여성들을 밀착 취재했다.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사법고시 출신 최초 여성 변호사이자 최초 여성 정무수석인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고졸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청장 바로 다음의 최고위직인 치안정감까지 오른 최초 여성인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현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여성 최초로 국내 금융사 CEO를 역임한 손병옥 프루덴셜생명 회장, 삼성증권 최초 여성 임원인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42년 포스코 역사상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오인경 상무, 1세대 여성 IT 벤처 기업가로 스물일곱에 창업해 20년간 기업을 건실하게 일궈온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 전국에 104개의 직영매장과 헤어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인생을 바꾼 드라마틱한 결단의 이야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커리어와 사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결정적 순간이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중국 상하이에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중국에 가지 않고 아이들과 한국에 남았다. 약 7년동안 워킹맘 생활을 하며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은 결단을 인생 최고의 결단으로 꼽았다.

금융업계 최초로 여성 CEO를 지낸 손병옥 프루덴셜생명 회장은 30대 후반 미국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경력이 끊긴 '경단녀'였다. 젊은 시절 똑 부러지게 일하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던 예전 직장 상사가 그녀를 스카우트하면서 손 회장은 44세에 재취업을 했다. 그녀는 새벽 5시에 출근해 업무에 매진하고 저녁에는 영어로 자기계발을 하는 철두철미한 노력으로 하나하나 성과를 이루어가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편견과 맞서 싸우려 한 결심이 결국 금융업계의 거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삼성증권 첫 여성 임원인 이재경 상무는 외국계 호텔 비서로 시작해 몇몇 직장을 거쳐 29세에 은행텔러로 일하게 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급한 성격에 실수가 잦았고 당황하면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결국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힌다. 위기를 겪던 이재경 상무는 직장상사의 권유로 영업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 진가를 발하게 된다. 소통에 능하고 추진력이 강한 성격이 영업에 들어맞았던 것이다. 이렇게 적성과 노력이 결합되면서 그녀는 '펀드 영업'의 대가가 됐다. 적성을 찾은 이후에는 금융지식과 영업이 더 잘 결합되어 있는 전문적인 일에 도전하고픈 마음에 은행을 떠나 더 치열한 '증권업계'로 이직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오인경 상무는 여성의 직무 배정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단순 행정이나 민원업무 쪽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사나 기획 등 핵심 직무에서 일하면서 기획을 해야 주인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여성들은 후선부서에서 일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회사 차원에서의 생각 전환이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여성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어요."

책은 이처럼 다양한 삶의 결을 가진 여성들이 마주치는 문제들을 다루며 여러 각도에서 '결단의 지혜와 통찰'을 제공한다. 커리어와 인생이 걸린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하고, 마음먹은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15인의 체험은 그 자체로 생생한 '결단 수업'이기도 하다.

좁은 취업문, 입사 후 경쟁,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공정한 처우, 경력 단절과 재취업의 고민, 유리천장 문제 등등 직장생활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갈등은 여전히 크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여성 1호 리더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한마디로 '개척기이자 분투기'다.

이들이 내린 결단 중에서 한결같은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제대로 갖추겠다'는 결심이다. 당연한 듯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다. 임신, 출산, 육아, 가사의 부담을 짊어진 채 상대적으로 그런 부담이 적은 남성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됐다.

수십년 간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틀에서 경쟁하고, '연줄'도 없고 조언해줄 여성 선배나 멘토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기르는 데는 남성 동료들보다 120%, 200% 더한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버텨내겠다'는 의지는 결단의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20~30대에게 꼭 필요한 커리어 및 리더십에 관한 조언에서부터 경력 단절로 인한 문제와 재취업, 창업을 하는 데 필요한 멘토링까지 여성들이 일과 사생활 모두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조언이 수록돼 있다. 268쪽, 1만4000원,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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