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춤의 최고봉 우봉 이매방선생의 49재가 최근 뉴욕 원각사(주지 지광스님)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다.
지난 24일 원각사 큰법당. 스님들의 낮은 독경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매방 선생의 영정을 들고 한복차림의 여성이 경건한 자세로 서있었다.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은 물론, 보스턴 문수사의 회주 도범큰스님까지 이레적으로 자리했다.
지난 8월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매방 선생은 전통춤 이수자로는 유일하게 승무'(제27호) '살풀이춤'(제97호) 등 중요무형문화재 2개 분야를 보유한 그는 호남춤을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지까지 전승시킨 주인공이다. 1998년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이 서훈되기도 했다.
한국춤을 대표하는 인간문화재의 49재가 뉴욕에서 올려진 것은 고인과 박수연 한국공연예술센터KAPAC) 회장의 특별한 인연덕분이었다.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매방 선생은 7세 때부터 권번 기생들을 가르치던 할아버지(이대조)에게서 춤을 배웠다. 15세 때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공연에서 승무를 춘 것을 계기로 유명세를 얻었고 기교가 뛰어난 호남 지방의 승무를 전국구로 확산시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
200명이 넘는 그의 제자중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전통무용가 박수연 회장이 있었다. 2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는 맨하튼 미드타운에 위치했으며 미국내에선 가장 뛰어난 기량의 공연예술단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은 물론, 정악과 산조, 판소리 그리고 퓨젼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매년 가야금, 해금, 장구, 대금 등 전통악기와 판소리 무료워크샵도 개최하고 있다.
7살때부터 경향 각지의 소리명인과 춤꾼으로부터 사사한 박수연 회장은 80년대초 미국에 이민와 30년 넘게 우리의 춤을 미국땅에서 보급하고 있다. 그가 이매방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 갈 때마다 스승의 집으로 달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옆을 지키며 배워나갔다. 잘못된게 있으면 성인 제자라도 거침없이 매를 대는 엄한 스승이었지만 생전에 “박수연은 소리속도 알고 장단속도 알고 춤속을 다 알아 춤집도 예쁘다"고 못내 자랑스러워 했다.
마침내 그녀는 2003년 이매방 살품이춤을, 2009년엔 이매방 승무 이수자가 되었다. 이매방 살풀이 이수자는 박수연 회장을 비롯해 미국에 3명이고, 승무는 박수연회장이 유일하다. 미연방정부예술진흥회(NEA)로부터 한국의 인간문화재에 해당되는 내셔널 헤리티지 펠로(national heritage felloow)에 지정된 그녀가 이매방 살풀이춤과 승무를 동시에 이수했다는 것도 스승과의 남다른 인연을 말해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의 49제를 위한 특별한 춤공양 음성공양이 이어졌다. 먼저 성악가 박소림씨가 '극락왕생의 노래'를 불렀다. 박소림씨는 "이매방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49재 소식을 듣고 꼭 참여하고 싶었다. 선생님을 모신 영단 앞에서 노래를 들려드려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송희씨의 지전춤과 박수연 회장의 살풍이 춤이 이어졌다. 살풀이 춤을 수없이 췄지만 이날 그녀의 춤은 마치 삼매의 경지에 빠진 것 같았다. 얼마전 발목 수술을 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스승이 화현한 듯 너울대는 몸동작은 보는 이들의 넋을 잃게 했다.
스승의 49제를 모시며 춤을 춘 소회는 어떠했을까.
"제가 어찌 감히 은사님앞에서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 미국생활에서, 춤인생에서 목적을 제시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늘 해주시던 말씀이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씀 속에서 하심(下心)을 배웠구요. 선생님 영전 앞에서 춤을 추며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미국땅에서 선생님 춤을 계속 전승하고 계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