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를 쓰는 일을 직업이자 생계로 삼는 사람이 글쓰기의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도 오랫동안 버젓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일입니다."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 1부에서 소설가 신경숙(52) 표절 파문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0년 신경숙 표절 문제를 제기한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을 깔아주었나'라는 주제 발표에서 "신경숙은 문단에서 진영 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하고 새로운 이윤 동기를 개척한 문화상품으로서 효과적으로 소비됐다"고 밝혔다.
정 평론가는 "신경숙에게 있어서 문단의 기대와 상찬, 일방적 띄워주기 등과 자신의 실체가 현격하게 괴리되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것은 표절,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은 상습적인 표절행위일 것이다"며 "90년대만 하더라도 문단이 키워주는 데 급급했던 신경숙은 모두가 아는대로 스스로 문학권력으로 부상했다. 신경숙을 비판하거나 흠을 거론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설'의 표절 외에 확인된 다른 표절에서도 신경숙이 남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가져온 행위에 대해 전혀 가책이나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할 때 자신의 문학에 특권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욕망이 드러나고 있다"며 "신경숙의 상습적 표절은 그녀의 글쓰기에 내재한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사건의 공론화가 한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문학계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괴물을 만들어낸 문단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물갈이하지 않는다면 문학에 관한 한 진짜 환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경숙 문학의 부상을 막지 못한 대가로 문학에 환멸의 시대가 온다면 정당한 대가라고 해야 할 것인가"고 반문하며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을 원치 않는다면 그 작업의 첫 삽을 뜨는 일은 90년대 문단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서영인과 김대성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서 평론가는 "이응준 작가의 표절 제기 글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사회 전반에 퍼졌다. 논란이 지속되게 한 것은 신경숙 작가의 해명, 충판사 창비의 보도자료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절상의 비교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표절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은 바가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를 믿어달라'라고 신경숙 작가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고, 창비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설'은 '우국'과 비교할 수 없는 빼어난 작품이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며 신경숙 작가를 옹호했다"고 덧붙였다.
독자들이 분노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상식의 붕괴가 있다고 주장했다. 표절이 타인의 창작행위를 도둑질하는 범죄행위라는 당연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해야 할 작가와 출판사가 이를 부인하고 무시했다는 것이다.
서 평론가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가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도 충격인데, 잘못을 부인하고 자신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 이것이 대중들을 분노케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더라도 비판은 계속돼야 하고, 불가능의 세계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문학정신이기도 하다"며 "대중의 욕망은 단일하지 않으며 문학이 만들어 갈 사회와의 접촉면은 다양하고 복잡한 대중의 욕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김대성 평론가는 "신경숙 사태에 관한 유별난 관심에 시큰둥했던 것은 터질 것이 기어이 터졌다는 예상이 적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태를 두고 난립하는 비판의 목소리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며 "특히나 한국 문학의 종말이나 해체에 관한 자성의 목소리는 십수년 전 문학권력 비판 논쟁과 너무 유사해서 그 반복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또 한국 문학의 종말과 끝장을 선고하는 목소리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문학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우선 사적, 공적 관계망을 독점함으로써 개별자들 입맛에 맞게 거덜내고 있는 문학의 다단계적 구조의 해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생과 연대의 생태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종말과 죽음 선고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문학에 작동하는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창작과비평(창비), 문학동네(문동) 대형 출판사 편집위원들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내가 만약 편집위원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논의를 하기 위해 나왔을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한 것 같다. 창비와 문학동네가 이유는 밝히지 않고 공식적으로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오후에 이어질 2부에서는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잡지와 출판, 계몽과 권력 - 한국 문단과 지식인 공론장의 소사·전망'을 주제로 발표하며 김명인 문학평론가와 김남일 실천문학 대표의 토론이 이어진다.
3부에서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발제 '한국 문학 장의 생태적 위기와 대안적 문학생산 주체'에 이어 홍기돈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임태훈 문학평론가의 토론이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