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이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이틀 만에 약 70분 동안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의 핵실험에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중 외교장관 간 전화회담은 이틀에 걸쳐 두 차례나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지만, 북핵 문제 해법을 두고는 양국 간 시각 차이만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8일 오후 8시부터 약 70분 동안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양측은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는 한편 향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채택 등 대응방향에 대해 협의했다"고 덧붙였다.
윤 장관은 이날 왕이 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강하게 규탄하면서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부에 따르면 윤 장관은 "이번 북한 핵실험은 한반도와 동북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매우 엄중한 사태"라고 지적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북한 비핵화를 명시한) '9·19 공동성명'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북한의 도전 행위에 국제사회가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단합해 북한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북한의 지속되는 핵능력 고도화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핵 불용'에 대한 확고한 원칙하에 북핵 능력 고도화를 차단하고, 이번 핵실험에 대한 단호한 제재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점에서 안보리에서 강력한 내용의 결의가 신속히 채택되도록 한국과 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덧붙였다.
이는 북핵 문제 해법을 두고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에 '방점'을 찍으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왕이 부장은 "북한의 핵실험을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천명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왕이 부장은 "세 가지 원칙은 상호 연결돼 있고,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며 "중국 측은 한국 측과 의사소통을 유지하며 현재의 복잡한 정세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왕이 부장은 "핵 문제의 협상 궤도로의 복귀를 추진해야 된다"는 입장을 강조, 사실상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과의 시각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차이'는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간 전화회담에서도 예고된 바 있다.
앞서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은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8일 오후 4시께부터 약 45분 동안 전화회담을 갖고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양국 간 평가 교환 및 향후 대응 방안, 중·북 관계 등에 대해 논의했다.
황 본부장은 "유엔 안보리 조치를 포함해 국제사회가 이전과는 차별화된 강력한 대응을 하도록 한국과 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으나, 우다웨이 특별대표는 "안보리가 이번 사태에 합당한 대응을 하는 데 있어 한국과 긴밀히 소통·협력해 나가겠다"면서도 "아울러 '6자회담 틀'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노력을 계속 경주해 나가자"고 답했다.
'차별화된 강력한 대응'이라는 황 본부장의 언급에 대해 우다웨이 특별대표가 '합당한 대응'이라고 답한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과도한 제재조치에는 반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중국 측이 우리 측과 소통·협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것일 뿐 결국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는 기존 입장에 변화를 주지 않고 6자회담을 통한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일본 3국의 대(對) 중국 압박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 가능성이 높지 않아 향후 유엔 안보리 논의 과정에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이에 한·미·일 3국은 다음 주 차관급 3자 회담을 열고 북핵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 대한 압박도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안보리 협의과정에서 한·중 양국 유엔 대표부와 각급에서 긴밀히 협의를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며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도 조만간 개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외교부는 또 윤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간 통화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윤 장관은 북핵 사태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는 6일 저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는 7일 새벽 통화한 바 있다.
한편 윤 장관과 왕이 부장 간 전화통화는 당초 지난 7일 오후 1시께로 잡혔다가 중국 측 사정으로 하루 더 연기됐고, 이후 일정이 조정되면서 8일 오후 7시에 통화하기로 했다가 다시 한 차례 더 미뤄졌다. 그만큼 양국 간 사전 조율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