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한·일 정상회담을 끝으로 숨가쁘게 이어져온 하반기 핵심적 외교일정을 사실상 마무리 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국내 현안에 보다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작업과 내년도 예산안 및 주요 법안 처리, 개각 등을 통해 국정 동력을 한층 끌어올려 할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초 중국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시작으로 10월 중순 미국 방문,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한·일·중 3국 정상회의 및 양자회담까지 두 달 여간 통일과 미·중 균형외교를 골자로 하는 외치(外治)에 집중했다.
박 대통령은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역대 최고의 한·중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의 지뢰·포격 도발과 뒤이은 8·25 남북합의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북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카드인 중국과의 밀착으로 추가 도발을 억제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10월 방미에서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안게 된 숙제인 한미동맹 강화에 집중했다. 미국의 심장부인 펜타곤 방문으로 국내외 일각에서 제기됐던 '중국경사론' 우려를 씻어내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로 다루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3년 6개월 만의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는 '아시아 패러독스(Asia's paradox)'로 중단된 3국 협력체제 복원의 계기를 마련했다. 취임 후 첫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대일(對日)외교 정상화의 물꼬도 텄다.
박 대통령은 이제 내치(內治)로 눈을 돌려 국정속도전에 나설 전망이다. 일단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고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국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
역사왜곡이나 미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고 일축하면서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정한' 집필도 강조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단체의 찬반이 여전히 첨예한 데다 교육부의 확정고시 조기강행에 야당이 본회의를 보이콧하고 농성에 돌입하면서 정국 파행이 심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교과서 정국을 빨리 마감해하고 민생에 전념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가 국정화 확정고시 일자를 당초 5일에서 3일로 앞당긴 것도 교과서 정국을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교과서 정국의 전면에는 나서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대국민담화에 가까웠던 지난 시정연설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을 충분히 국민들에게 전달한 데다 대통령이 선봉에 서는 것은 오히려 정쟁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만큼 이제는 정부에 공을 넘기고 민생·경제 현안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에 앞서 현 검정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국정화 당위성을 주장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여당의 긴밀한 공조 속에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준수,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 노동개혁 5개 법안 처리, 한·중 등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등에 주력할 전망이다. 정부와 새누리당, 청와대가 이날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경제활성화와 정기국회에서의 민생법안 통과 등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그 연장선이다.
지난달 19일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교체로 시작된 내년 총선용 '순차개각'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내각에 남은 국회의원 겸직 장관 3인방 중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우선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이끌고 있는 황 부총리의 경우 교육부의 국정화 확정고시로 맡은 바 소임도 끝난 만큼 국회 복귀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최근 당내에서 경질론이 제기됐던 것도 조속한 교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총선 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던 김 장관은 지난달 부분 개각 당시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잠시 교체가 미뤄졌지만 최근 후임자 인선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여권에서는 이르면 다음 주 중에 추가 개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후임자로는 교육부 장관의 경우 임덕호 전 한양대 총장, 이준식 전 서울대 부총장 등 교육계 인사가 거론되고 있으며 여가부 장관으로는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 등 여성 정치인이 유력하다는 하마평도 돌고 있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이달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을 통해 외교 지평을 확장하는 노력도 병행한다. 박 대통령은 오는 4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창조경제, 문화·예술, 과학기술 협력 강화를 논의하며 9일에는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과 북극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