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는 이전과 달리 폭로나 여야간 큰 충돌은 빚어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와 국감 중에 터진 판교 환풍구 사고를 계기로 안전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질의가 이뤄졌으며 사이버 검열문제 또한 주요 쟁점이 되면서 국감 열기를 높였다.
하지만 일부 피감기관장들의 '배째라 식' 증인 출석 거부 행태가 반복되면서 '맹탕 국감'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피감기관들의 상습적인 자료제출 거부로 국회 상임위 곳곳이 파행에 겪는 등 노골적인 국감 방해 행위도 되풀이됐다.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수단이 피감기관의 꼼수로 상당 부분 희석되는 점을 감안할 때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주 적십자 총재 '도피성 출국' 시끌
여야는 올해 국감를 준비하며 민생 위주의 정책 검증에 강조했지만, 몇몇 인물들이 핫 이슈로 떠올랐다. 낙하산 인사 논란에 이은 '국감 도피성 출국' 논란의 중심에 선 김성주 대한적십자 총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총재는 지난 21일 대한적십자 국정감사(23일)를 앞두고 중국으로 출국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적십자연맹 아태지역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국감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성' 출장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김 총재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적십자사 총재 임명 당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게다가 적십자 회비를 수년 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김 총재는 애초 국감 불출석 의사를 통보했으나 여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 23일 김 위원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는 27일 오후에 성실히 국감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희정권 시절 폐지됐다가 1987년 부활한 국감에서 기관 증인으로 채택된 증인이 불출석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국회 복지위는 김 총재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한 상태다. 동행명령은 말 그대로 증인이나 참고인을 국정조사·국정감사장에 동행할 것을 명령하는 강제수단이다.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해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증인은 또 있다. 국민적 공분을 산 세월호 참사의 주인공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이다.
이 전 선장과 함께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과 박한결 세월호 3등항해사, 조준기 세월호 조타수는 지난 16일 국감과 24일 종합 국감에 재판 및 건강상의 이유로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국회 농해수위가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국감 증인이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이하에 처해진다. 하지만 국회의 동행명령에도 불출석하면 '국회 모욕죄'가 추가돼 징역 5년 이하로 처벌이 강화된다.
◇ 자료 제출 거부로 상임위 곳곳 '파행'
국감 초반 이슈가 된 것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산하기관 국정감사자료 사전검열 파문'이었다.
'장관님 지시 사항:의원 요구 자료 처리 지침'이라는 제목의 산업부 문건이 드러나면서다.
의원실에 제출할 국정감사 자료를 산업부에 사전 승인 받으라는 공문을 산하기관에 보낸 것인데, 여기에는 '이미 공개된 사항 위주로 작성하라', '상세하게 작성하는 것은 자제하라'는 지시도 담겨 있었다.
이는 사실상 정부기관이 조직적으로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야당은 "계획적으로 국정감사를 방해한 증거"라고 질타했다. 윤 장관은 책임 회피성 대응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미방위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국감에서는 원장 공모 절차 관련 서류 제출 논란으로 파행을 겪었다. .
낙하산 의혹을 제기한 야당이 KISA 측에 임원추천위원회 회의록과 후보자 평가표 자료를 요구했지만, KISA 측은 내부 규정을 이유로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24일 미방위의 '방송문화진흥회 국감에서는 의원실에 제출된 이사장의 법인카드 내역이 조작된 자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 방문진 이사장의 법인카드 내역 자료에서 카드 번호가 바뀌고, 일부는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법사위의 감사원에 대한 국감, 정무위의 국가보훈처 국감도 자료 제출이 논란이 돼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피감기관들의 잇따른 자료 제출 거부로 국회의 겉핥기 감사로 이어지며,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의 행정부 견제가 무력화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