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화제



'美점령군' 이재명 발언 파장…역사학계는 "팩트인데?

"친일파, 미점령군 합작" 이재명 발언에
야권 비판 일색…"망언, 역사 인식 한계"
학자들 "이 지사 발언, 역사적 사실 맞아"
"팩트 무시한 비생산적 정쟁…안타까워"

 

[파이낸셜데일리 서현정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일세력과 '미(美) 점령군'이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야권에서 '망언'이라며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이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평가하며,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5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는 지난 1일 대권 출마 선언 후 경북 안동을 찾아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비 여사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했지 않느냐"며 "그 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한 역사적 평가나 예우나 보상을 했는지 의문이고, 그런 면에서 보면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발언 후 야권에선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대권주자로서 역사관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주장이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이 지사의 역사 인식이 참으로 충격적"이라며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세력이 되고 미국이 점령군이라면 그동안 대한민국은 일본과 미국의 지배를 당해온 나라였단 말인가"라고 반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며 "이재명 지사 등의 언행은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 후보 이재명 지사도 이어 받았다"며 "이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했다.

 

 

국민의당도 이날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해 "역사 인식의 한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날 뉴시스와 통화한 역사학자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지사의 발언을 '팩트'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로서는 크게 문제 삼을 만한 점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미군과 소련군 모두 38선을 분기점으로 일본군 무장해제로 들어온 점령군"이라고 말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도 "미국과 일본이 전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이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일본의 통치 하에 있는 한반도로 진격한 것"이라며 "점령이 맞다"고 했다.

이어 "처음 점령군이라는 표현은 가치중립적이었으나, 독재와 군사정권을 거치며 역사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미군이 친일파와 협력해 정권이 수립됐다는 아쉬움이 생겨나며 (미군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이라고 논란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1945년 9월9일 발표된 맥아더 사령부 포고 제1호엔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표현이 나와있다.

'미군과 친일파가 정부 수립에 합작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정태일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점령 통치에 협력한 사람들이 전부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친일파가 상당수 포함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반민특위가 해체돼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친일파가 주도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번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논쟁거리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치권이 힘을 빼고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안 교수는 "1980년대 군사 정권 하에서 이뤄지던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라며 "21세기에도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 논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정 교수 역시 "팩트를 두고 피곤한 말씨름하는 건 생산적이지 않다"며 "이념이나 색깔로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역사적 관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이해와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사실도 무시한 채 정쟁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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