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에게 10년 동안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일정 시설이나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관련 시설 운영자에게 시설폐쇄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조항이 '위헌' 여부를 판단 받는다.
21일 법원 등에 따르면 인천지법 행정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지난달 25일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 A씨가 아청법 제56조1항과 제58조2항에 대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였다.
아청법 제56조1항은 성범죄를 저질러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 제외)는 10년 동안 아동·청소년 관련시설을 운영하거나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의료법상 의료인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제58조2항은 '제56조1항을 위반한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의 운영자에게 중앙행정기관장이 폐쇄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천시 남동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보톡스 시술을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 환자의 가슴을 만진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2월 벌금 5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자 인천시 남동구청장은 지난 7월 A씨가 운영하는 병원의 폐쇄를 요구하는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남동구청장의 폐쇄요구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되자 지난 8월 "폐쇄요구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아동 등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법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성범죄의 내용과 불법성의 정도, 성인 또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인지 여부, 성범죄자의 직업과 관련해 범죄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 재범 위험성 등과 관련 없이 성범죄자이기만 하면 예외를 두지 않고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시설을 운영하거나 취업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제한한다"며 "특히 의사는 의료기관 취업이나 운영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직업을 수행할 방법이 없어 다른 직업군보다 직업선택의 자유나 직업행사의 자유를 더욱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상정보등록이나 등록정보 공개·고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명령 등 다른 제도하고도 제한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등록정보 공개·고지 제도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개·고지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규정과 전자발찌 부착명령도 일정 성폭력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서만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아청법 조항은 성범죄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음에도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침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조항은 불법성의 경중, 피해 대상자를 고려해 취업제한 대상 범죄를 축소하거나 법정형이나 선고형에 따른 제한 대상·기간 등을 구분하거나 불복절차를 마련하는 등의 덜 침해적인 수단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해당 아청법 조항이 이루려는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와 사회를 지키려는 공익은 매우 중요하고 절실한 것임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아동·청소년 관련시설 등에 취업 등을 제한하고 폐쇄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가벼운 성범죄나 성인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범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들의 침해되는 사익과 공익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