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 1일 분식회계 근절방안을 내놓았다. 분식회계나 부실감사가 이뤄진 회계법인의 대표이사까지 직무 정지·해임 등 중징계 하겠다는 내용이다. 고의성이 짙다고 판단되면 검찰 고발도 불사하게 된다. 내년 2월부터 적용하겠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데 따른 고강도 처방인 셈이다.
하지만 분식회계가 일어나는 특수한 정황, 이를 알 수 있는 당사자가 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당국의 이번 대책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내부자의 협조 없이는 부정의 실상을 밝혀내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12월31일 전자저울 업계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던 카스의 김동진 전(前) 대표가 자진 사임했다.
당시 카스 이사회와 회계법인들의 진상 조사 결과 김 전 대표의 1조1313억원 규모의 횡령 혐의가 확인됐다. 그 뒤 회사는 상장 적격성 심사까지 받았다.
김 전 대표의 횡령 사실은 익명의 내부자 고발을 통해 드러났다. 이 내부자가 과거 회계 부정을 외부 감사를 진행하는 회계법인에 알리고, 이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로 불리는 내부 고발자에 의해 한 회사의 회계부정이 들춰지는 사례는 가뭄에 콩날 정도로 극히 드물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회계 관련 내부 고발 제보는 1년에 20~30건 정도 접수된다. 하지만 대부분 증거가 부족하거나, 이미 외부에 알려진 내용을 근거로 한 제보들인 탓에 실제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제대로된 내부 고발자가 없는 셈이다.
한 대기업 계열사의 전직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업무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서 (회계처리를)하는 수주 산업에서 많이 일어나는 편"이라면서 "회계법인도 매출이나 손익이 기업 고객에게 종속적인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에서 마음먹고 장부를 조작하거나 증거를 은폐하는 경우, 문서 또는 정황만으로 부정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컨대 분개장(모든 거래내용을 분리해서 발생순으로 기록하는 장부)은 기록하되 현장에서 발행한 장표나 세부 내용이 담긴 보고서는 폐기하게 되면, 부실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한 회계사는 "수기로 작성했던 과거보다 전산으로 처리하게 되면서 더욱 부실한 부분을 찾기 어려워졌다"며 "눈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웬만한 내부자들이 부정 회계에 관한 내용을 외부에 알린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뚜렷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진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부실 회계 관계자'인 내부자가 아닌 경우 당국 차원의 조치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상 기업의 부정 회계에 대한 순수한 내부고발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회계실무자 또는 관련 업무 담당자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회계 처리를 담당했기 때문에 가장 증거도 확실하며 문제를 바로잡기도 용이하다.
물론 임원진이 해고를 당하거나 퇴사를 하면서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전(前) 회사의 비리 수준이 과도하다고 판단해 정의감 차원에서 외부에 알리거나 해고에 따른 불만을 품고 알리는 경우가 많다.
때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거래처 기업에서 고발하기도 한다. 예컨대, 관행적으로 가격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영수증 처리를 하던 두 회사가 갑자기 거래처가 바뀌거나 소위 과도한 갑(甲)질을 당하는 경우 앙심을 품고 제보하는 식이다.
결국 문제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지 않는 이상 부정한 회계를 인지하고 외부에 알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본인까지 처벌 받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바로 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공공연하게 제보자 신상이 알려지기 때문에 굳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정을 밝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분식 등 부실 회계 문제가 부지기수이며, 실태를 파악해 개선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확실한 내부자의 양심적 선언을 유도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금융감독원 회계심사실 관계자는 "제보는 있지만 내용이 경미하다거나 증거가 미약한 경우가 많아 실제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불이익 등을 우려해 사실상 (내부고발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