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여개가 넘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라정찬(51) 알앤엘바이오 전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데는 총 212억원에 달하던 배임 혐의 중 절반 이상의 배임액이 무죄로 사라진 점이 주효했다.
아울러 라 전 회장이 구속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역시 부당하게 손실을 회피한 혐의가 모두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라 전 회장의 범죄 액수는 대폭 감액됐다.
◇관계사 주식 '고가매입'…法 "회계사 판단 따른 것"
검찰은 라 전 회장이 2009~2010년 알앤엘바이오 관계사인 알앤엘내츄럴라이프의 주식을 고평가된 가격에 매입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던 알앤엘바이오에 109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당시 알앤엘바이오는 2010년 기준 영업손실이 339억원에 달했는데, 라 전 회장에 의해 고평가된 가격에 무리하게 알앤엘내츄럴라이프 주식을 매수하면서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주당 1420원이 적정 주가였고 사실상 주가는 1091원에 불과했음에도, 라 전 회장이 주당 2562원으로 고평가된 가격에 알앤엘내츄럴라이프 주식 매매를 추진했다고 봤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위현석)는 이 같은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 당시 라 전 회장 등은 담당 회계사의 주식가치 평가를 신뢰해 주가를 책정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담당 회계사가 당초 2010년 12월 결산수정분개를 기준으로 알앤엘내츄럴라이프 주식가치를 1091원으로 평가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해당 평가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담당 회계사는 주당 2347원으로 매긴 주식평가에 대해서도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진술을 했다"며 "라 전 회장 등이 전문가인 담당 회계사의 주가 평가에 관해 특별히 의심을 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취지로 "라 전 회장 등이 알앤엘내츄럴라이프의 주식가치가 매수가액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고평가된 가격에 매매를 한다는 고의성 입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혐의…法 "증명 안 돼"
검찰은 또 라 전 회장이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해 수십억원대의 손실을 회피했다고 봤다. 자본잠식 상태에서 횡령 등 혐의를 감추기 위해 회계법인에 감사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서 알앤엘바이오 주식을 미리 매도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통해 감사의견거절을 예견한 라 전 회장이 55억4000여만원 상당의 손실을 미리 회피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나 라 전 회장이 회계법인의 의견거절 표명을 미리 예측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시점을 불과 2~3일 앞두고 알앤엘바이오 측이 뒤늦게 감사자료를 제출했다는 점에서 라 전 회장이 의견거절 공시 상황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아울러 "회계법인의 의견거절 사유에 '감사자료 미제출'이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며 "라 전 회장 역시 의견거절을 피하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고 봤다.
라 전 회장은 아울러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줄기세포 임상시험업무를 정지시킨다는 통보를 받고 이 정보가 공개되기 전에 자신이 소유한 알앤엘바이오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알앤엘바이오가 식약청 처분에 대비하겠다는 자율공시를 한 점 ▲식약청 처분에 대해 알앤엘바이오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 주식매도 시점 전에 언론에 보도된 점 등을 토대로 임상시험업무 정지 통보 역시 이미 공개된 정보였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100억원 이상의 배임 혐의와 50억원 이상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당초 배임·횡령과 주가조작 혐의 액수가 대거 감액됐고, 이는 결국 라 전 회장이 실형을 면하는 주효한 요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