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심의 시한폭탄' 의료용 가스…판매·관리 '엉망'

"배달해주는 곳에 전화하면 갖다줍니다.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는 잘 몰라요"

3일 서울 서초구청의 의료용 가스 사용처에 대한 단속 현장에서 나온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성형외과 수술시 전신마취를 위해 필요한 의료용 고압가스가 허술하게 판매 또는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성형외과 병원의 관리 허술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령이 없어 고압가스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단 의료용 고압가스 판매를 위해서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따라 '고압가스 판매허가'가 있어야할 뿐 아니라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 도매상 허가'도 필요하다.

하지만 의약품 도매상 허가증이 없는 채로 의료용 고압가스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허가증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채 고압가스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 대다수였다. 

고압가스 사용자인 성형외과에서는 고압가스 관리시 종류가 다른 고압가스통을 한 곳에 관리하거나 보관 시 씌어야 하는 용기보호캡도 씌우지 않는 일이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

이산화질소, 산소 등을 연결하는 밸브의 색도 같아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성형외과 병원 곳곳이 '안전 불감증'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었다.

실제로 이날 구청 단속반과 함께 찾은 강남역 인근 N성형외과는 남자 화장실 중 한 칸을 고압가스 보관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화장실 내 청소도구함을 보관하는 곳에 산소와 이산화질소 등의 커다란 용기 5개가 비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캡이 씌워져있고 기압계도 있었지만, 바로 옆에는 보일러가 설치돼 있어 위험천만해 보였다.

단속반의 정정재 계장은 고압가스통이 남자화장실 구석에 그것도 보일러 옆에 설치돼있다는 것에 당황한 듯 했다. 가연성 물질 특히 보일러옆에 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G성형외과는 고압가스를 수술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보관하는 것 자체도 위험한데 가스통 입구에 씌우는 용기보호 캡도 없었다. 용기보호 캡을 씌워놓지 않으면 미세하게 가스가 샐 수 있어 위험하다.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가스통을 고정해주는 고정대도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고압가스에 판매와 관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냥 배달해주는 곳의 전화번호만 알고 있다고 했다. 

정 계장이 가스통에 적힌 업체에 전화를 걸어 의료용 허가증이 있냐고 묻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판매처에서도 의료용 허가증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판매처에서 책임자라고 소개해 준 이는 또 다른 업체 소속이었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의료용 허가증이 없는 일반 의료기기 판매업체에서 하청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서초구가 지난달 14일부터 20일까지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합동으로 지역 의료용 고압가스 21개 사용시설을 단속한 결과 15개 병원 또는 의원에 36개 항목을 적발했다.

적발된 주요 내용은 의약품 도매상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판매, 고압가스 용기보호 캡 미장착, 특정고압가스 사용 신고 규정 위반, 용기보관실 경계·위험 표시규정 위반, 신고된 저장량 초과 등이었다. 36개 항목 중 23건은 행정처분을 받았다.

의료용 고압가스 관리를 허술하게 하는 병원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는 가스통 캡을 장착하지 않는 것, 고정대를 사용하지 않는 것, 고압가스를 각기 다른 장소에 종류별로 보관하지 않는 것, 가스 종류에 따라 다른 색의 연결관을 사용하지 않는 것 등 병원의 잘못된 보관법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가스통에 캡을 씌우는 책임은 병원이 아닌 판매자에게 적용하지만, 판매자가 '나는 씌웠는데 사용자가 안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정재 서초구청 푸른환경과 계장은 "고압가스를 판매하는 판매자에 대해서는 고압가스 안전 관리법으로 위반 시 고발이나 사업정지등의 처벌을 할 수 있지만 이용자인 병원에 대해서는 관련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또 "고작해야 의료용 산소양의 저장 양 초과에 관해서만 처벌조항이 있다"며 "이것도 특정고압가스사용자로 신고를 해둔 사람에게만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특정고압가스사용자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설명했다. 

실제로 병원들은 정기검사와 보험가입, 안전관리 선임에 따른 비용이 발생해 신고를 기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압가스에 대한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법 때문에 고압가스로 인한 사고가 실제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부산에서 45㎏ 탄산 가스통이 20m정도 로켓처럼 날아가 식당을 덮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스통 용기보호 캡을 씌우지 않고 작업을 하다 일어난 대형사고다.

구청 관계자는 "단속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바탕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법률 개정안을 건의할 예정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와의 합동 단속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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