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소속 비정규직 최정명(45)씨는 뉴시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고공농성 100일을 맞이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기아차 사내 하도급과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동료 한규협(41)씨와 지난 6월11일 서울 중구 소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4층 옥상에 있는 광고탑에 올랐다. 18일로 고공농성 100일째를 맞는다.
이들은 높이 75미터, 폭 1.8미터의 옥상 광고탑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최씨는 "한씨와 함께 매일 두 시간씩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 맨손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며 "아프면 지는 거다. 아플 수 없고 실제로 아픈 곳도 없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을 시작할 때 고혈압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한씨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고공농성의 발단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정창근)는 지난해 9월25일 기아차 사내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지난 5월에는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부를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최씨와 한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라"며 지난 6월11일 낮 12시30분 옥상 광고탑에 올랐다. 최씨는 "고공농성은 투쟁의 방법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수단 중 하나"라며 "광고탑에 오를 때부터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올라왔다"고 회상했다.
지난 100일 동안 이들에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7월25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지난달 10일부터 15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총 13일 동안 식사 반입이 중단되면서 강제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20일에는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으며, 지난 7일 새벽에는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씨는 "가족들이 물과 식사를 올려주기 위해 인권위를 찾았다가 쫓겨나고 심지어 '죽어서 내려오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며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굉장히 무기력했고 분노가 치밀었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만 번에 한 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라며 "자다가도 수시로 깜짝깜짝 놀라 깨기 때문에 길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이들의 고공농성을 지지하는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사측의 입장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사측이 법원의 판결대로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이들이 고공농성을 먼저 해제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이번 사태는 비단 현대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노동계와 시민사회, 종교계까지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느냐"며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법대로 하자고 했으니 법대로 했고, 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법원 판결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대한민국 사회는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이 아닌 만 명에게만 평등한 법이 지배하는 사회"라며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대재벌과 권력에게 '제발 그것만이라도 지켜달라'고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추석연휴가 지나고 계절이 다시 바뀌더라도 사측이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내려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대로 내려갈 수는 없다"며 "현재로서는 아프지 않게 몸 관리를 잘해서 끝없는 마라톤을 이어가는 것이 최선의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