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92) 전 한보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한보철강 대표 출신 정모씨가 "출국금지 연장 처분은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정씨는 국세 1000억여원을 체납해 국세청의 요청으로 매년 출국금지가 연장되고 있는 상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는 정씨가 "출국금지 연장 처분은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출국금지기간 연장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체납자에 대한 출국금지는 조세채권의 정당한 집행을 통한 국가재정의 건전성과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공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출입국관리법상 출국금지를 위해서는 체납자가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우려가 있으면 충분하고, 확정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출국할 경우 국내에 은닉한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기 충분하다"며 "정씨 소유의 은닉재산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없기에 출국을 금지한 처분은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정씨는 정 전 회장 등이 재산을 은닉할 당시 직접 관여했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씨가 출국할 경우 정 전 회장 등과 접촉해 은닉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방안을 물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실제로 정씨는 거액의 국세를 체납하면서 정 전 회장이 체류했던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하면서도 방문 목적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산 도피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아버지 정 전 회장을 만나기 위해 출국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씨가 정 전 회장에게 입국을 권유할 수 있고, 정 전 회장이 입국하는 데에도 아무런 법률적 장애 사유도 없다"며 "정 전 회장의 건강이 현재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2013년 6월 국세청의 요청에 따라 정씨에 대해 출국금지처분을 내렸고 이후 출국금지기간이 만료될 무렵마다 정씨에 대한 출국금지 기간을 6개월씩 연장해 왔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증여세 약 639억원, 기타 국세 약 390억원을 체납해 국세청이 매년 공개하는 개인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서 4번째로 체납액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정씨는 "세무당국이 재산을 모두 압류하고 공매절차를 진행함에 따라 현재 재산이 남아 있지 않다"며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는데도 출국금지 처분을 내린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反)해 부당하다"며 이 사건 소송을 냈다.
한편 정 전 회장은 지난 1997년 한보그룹의 5조7000여억원에 달하는 부실대출 규모가 드러난 사건인 이른바 '한보사태'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2002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정 전 회장은 이후 2007년 허위 계약을 맺어 임대 보증금 명목으로 거액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을 받던 중 신병치료를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해외로 출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