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한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전모(45)씨에게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3년 6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후 여성이 가해자로 기소된 첫 사례로 관심이 쏠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이동근)는 22일 강간미수 및 흉기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9명 전원 만장일치와 예비배심원까지 무죄로 의견이 일치한 점을 존중해 따르기로 했다"며 "배심원들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직접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 A씨는 망치로 맞을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지만 머리에 피가 나고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전씨의 피를 닦아주고 치료해줬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전씨가 서서 앉아있는 A씨의 머리를 망치로 찍었다면 전치 2주의 상처는 이해하기 어렵고 진단서에 망치로 맞았다고 써있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A씨는 전씨가 집착을 보이는데도 계속 연락을 취해 만났다"며 "과거 포도주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다면서 정체불명의 약을 주는데 선뜻 믿고 먹었다는 것도 의심쩍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 "155cm의 여성이 건장한 남성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어렵다고 보인다"며 "수면제를 먹었다면 잠든 사이를 기억 못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상식인데 오전 3시께 깨어나 전씨가 자신에게 올라타 있거나 망치를 들고 있는 것을 봤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씨도 수면제를 먹은 흔적이 보이며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 일관되지 않은 진술을 했지만 이를 배척할 수는 없다"며 "A씨의 아내와 경찰 진술, 카카오톡 메시지와 음성메시지만으로 범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수면제를 먹이고 손발을 묶어 성관계를 시도한 것이 강간미수죄에 해당하는지, 망치로 A씨를 내리친 행위가 정당방위였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또 사건 당사자인 전씨와 A씨 진술이 엇갈리면서 검찰과 변호인 측은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로 제기했다.
전씨는 지난해 8월18일 내연관계에 있는 A씨를 자신의 자택으로 부른 뒤 성관계를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씨는 A씨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 혐의도 받고 있다.
조사결과 전씨는 한달여 전 A씨로부터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을 듣게 되자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손목을 다친 A씨에게 "부러진 뼈가 잘 붙게 해주는 약"이라며 수면제를 먹인 뒤 손발을 묶고 성관계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틀에 걸쳐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으며 A씨의 아내와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의사 등을 증인으로 불러 진술을 들었다.
전씨 측 변호인은 "A씨는 만날 때마다 성관계를 요구했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해 전씨가 A씨의 동의를 얻고 손발을 살짝 묶은 것"이라며 "A씨에게 먼저 폭행을 당하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망치를 휘두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수면제에 취한 A씨가 정확한 진술을 했다는 것도 의문"이라며 "사건에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전씨는 무죄"라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전씨는 A씨에게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하고 집착했다"며 "전씨는 경찰조사에서 수면제를 먹인 사실이 없다고 했다가 성분이 검출되고 구입사실이 확인되자 말을 바꾸는 등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전씨에게 징역 4년6개월을 구형했다.
지난 21일부터 열린 전씨에 대한 참여재판에서는 총 10명의 배심원(예비배심원 1명 포함)이 참석했다. 전날 오후 11시40분께 평의에 들어간 배심원들은 격론 끝에 이날 오전 2시30분께 평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