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아 12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대협 수요시위 도중 분신한 최현열(80)씨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이날 낮 12시40분께 집회가 열린 인근 건물 앞 화단에서 미리 준비한 성명서와 유서를 둔 채 솜을 붙인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시민 4000여 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1500명)이 수요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상태였다.
사고가 일어나자 인근에 있던 정대협 관계자와 주변인들은 즉시 최씨를 담요로 덮고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껐다.
건너편에서 현장을 목격한 권양희(45·여)씨는 "갑자기 화단쪽에서 불길이 치솟아 봤더니 온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이 만세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권씨는 "처음에는 사람인 줄 모르고 그냥 화단에 불이 붙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살려달라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은 1분도 안 돼 꺼졌지만, 최씨는 현재 얼굴을 제외한 몸 일부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중이다.
최씨의 가방에서는 신분증과 유서, 각 언론사에 보내는 편지(성명서) 등이 발견됐다.
성명서에는 최근 논란이 된 박근령씨의 발언에 참을 수 없었다는 분신 이유를 비롯해 일본 정부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 등 위안부 관련 문제에 대한 비판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 3장의 유서에는 "내 목숨보다 조국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니 그동안 길러온 내공으로 과거사를 뉘우치면서 조국을 위해 불타는 마음 대한민국 재단에 바치고 후회없는 나라 살리는 길을 내 발로 걸어가기를 결심했으니 내 뜻을 이해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다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올해 초부터 정대협 수요 시위에 4차례 정도 참가하신 분"이라며 "시위에서 발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참관만 하다 가셨을 정도로 점잖으신 분이었는데 분신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오늘 시위에도 오랜만에 참여하셨는데 평소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한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가 입원한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 따르면, 최씨는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며 의식이 없고 폐기능 약화로 기계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다. 최씨는 전신 중 56%에 화상을 입었으며, 40% 이상이 3도 화상에 해당한다. 3도 화상은 염증이 진행되면서 죽은 피부가 몸 안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의료진은 죽은 피부가 몸을 파고들어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틀 후 죽은 피부 제거 수술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씨 상태가 위중해 생존을 장담할 수는 없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이 병원 화상외과 양형태 교수는 "환자의 나이가 많고, 중한 화상이어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며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평소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의 부친은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최병수씨로, 지난 1932년 6월 '영암 영보 농민 독립만세 시위 사건'에 참여해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독립유공자 추서는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광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2013년 5월 처음으로 시민모임 사무실을 방문해 회원들을 격려한 뒤 2014년 4월부터 후원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될 당시에는 수차례 법정을 찾아가 지켜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딸과 사위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최씨를 면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며, 이후 아들도 병원에 와 딸 내외와 합류했다.
이어 오후 10시께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와 자문위원 등이 방문했다.
이 대표는 "평소에 이런 일 있을지 전혀 예상 못했다"며 "(최씨는) 다혈질이랑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점잖고 조용한 분이었다. 말씀을 곱게 하시고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되거나 폐가 끼치지 않게 하려던 아주 고운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씀이나 품성은 아주 강직한 분이지만 이런 상황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며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