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게 생긴 사람이 서울에서 벤츠를 타고 와서 이름 빌려주면 용돈을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 이름으로 회사가 몇개고 세금이 4억이라고 하는거에요.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죠."
인천에 사는 정모(63)씨는 명의를 빌려줬다가 정씨 명의로 만들어진 유령회사가 저지른 탈세를 뒤집어썼다. 정씨는 지난해 금천세무서에서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 당했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은 진범이 잡혀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됐다.
독거노인과 노숙인들, 지체장애인 등의 명의로 유령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에서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조작해 수백억원의 탈세를 한 PG사와 땡처리 업체, 중견 쇼핑몰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카드깡 조직 총책 채모(61)씨와 유령회사의 명의자를 모집한 이모(59)씨,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사) 전무이사 박모(58)씨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발혔다.
경찰은 또 전산을 조작해 유령업체가 허위 매출을 내도록 한 중견 D쇼핑몰 실운영자 조모(43)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자신의 회사 매출을 유령회사 매출로 돌려 과세를 피한 땡처리업체 대표 김모(30)씨와 카드깡 조직원, 쇼핑몰 회사 직원 등 6명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명의를 빌려준 정씨를 포함해 12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채씨 등 카드깡 조직은 PG사와 결탁해 지난 2012년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소규모 땡처리 의류상 등의 매출을 22개 유령회사의 매출로 조작해 부가세 등의 세금을 내지 않도록 돕고 수수료를 받아 200억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땡처리 업체들에게는 카드 결제 대금의 10~11%를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이들이 조작한 허위 매출은 2859억원 상당, 누락한 세금은 7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명의 모집책 이씨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독거 노인 등의 명의로 유령법인 사업자와 법인통장 등을 만들어 카드깡 조직에게 명의 하나당 500만~1500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20~30만원을 줬다.
D쇼핑몰은 14개의 유령회사를 쇼핑몰의 가맹점으로 전산 시스템을 조작해 그곳에서 실제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만들어 범행에 가담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부가세 등 조세를 포탈할 목적으로 국세청의 실시간 감시 및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유령 업체를 만들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땡처리 업체들은 단기간 영업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매번 가맹점 등록을 하기 어렵고 세금 부과도 피할 수 있어 카드깡 조직의 매출 조작에 가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PG사와 계약한 회사의 매출은 PG사의 매출로 카드사나 국세청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국세청이 구체적인 매출 정보를 알 수 없는 점을 악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PG사는 신용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기 힘든 중소 쇼핑몰을 대신해 카드사와 계약을 맺고 신용카드 결제 및 지불을 대행하는 업체다. 금감원에 현재 78개사가 등록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국세청에서는 PG사에서 3개월에 한번씩 부가세 신고를 하면 그때 매출을 올린 회사를 확인할 수 있어 이들의 범행이 가능했다.
이들은 또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대포폰을 쓰고 '김 사장' 등의 호칭을 사용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했다.
명의를 빌려줬던 이모(69여)씨는 "나는 정부에서 주는 돈 몇십만원 받아서 사는 사람"이라며 "인감만 떼어주면 한달에 몇십씩 주겠다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해줬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보니까 6500만원 넘게 세금이 나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과 국세청이 조율을 해서 명의를 빌려준 이들이 실행위자가 아닌 것을 규명해 이들이 조세 포탈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00~200개 땡처리 업체들이 이런 수법으로 매출에 대한 과세를 피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카드사가 PG사와 대표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별도의 PG 특약을 체결하고 실제 판매자 거래정보 등을 반드시 제출 받도록 카드사에 지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카드깡 등 불법적인 신용카드 거래방지를 위해 금감원과 국세청 등 관계 부처와 협업 체제를 유지해 세금탈루를 적발하고 단속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