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관리자와 소유자 간에 지급방법 등을 협의하지 않은 농작물은 토지 사용료에 해당하지 않아 상호간 묵시적인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배기열)는 이길여(83) 가천길재단 회장이 송모(67)씨와 이모(85)씨를 상대로 낸 건물철거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건물을 철거하고 대지를 인도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송씨는 이 이사장이 소유한 토지를 관리하면서 쌀, 고추 등을 경작해 이 이사장에게 보냈는데 종류와 양이 일정하지는 않았다"며 "농작물이 대지에 대한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땅 사용료를 돈 대신 농작물로 지급한다거나 그 구체적인 지급방법이나 종류, 양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양측이 지상권설정계약 또는 토지 임대차계약을 묵시적으로 체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이씨는 토지를 개발한다는 이 이사장 측에 건물과 대지를 매수했다고 전혀 주장하지 않았다"며 "점유한 지 20년이 넘어 소유권을 취득했지만 소유라자면 당연히 취했을 행동을 하지 않아 자주점유의 추정은 깨졌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1985년 인천 중구 운북동 일대의 임야 9만4000여㎡를 매입한 후 송씨에게 토지 관리를 위임했다.
송씨는 앞서 1978년께 이 토지 위에 건축된 미등기건물을 매수해 거주해왔고 일부 땅을 개간해 벼농사와 고추농사 등을 지어왔다. 이씨도 1951년께 전 소유자에게 쌀 한가마니로 건물 등을 사들여 거주해왔다.
이 이사장은 2009년 토지를 개발할 계획을 세웠고 이후 송씨와 이씨 등을 상대로 "건물을 철거하고 대지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송씨는 매년 토지 사용료 명목으로 쌀과 고추 등을 지급해 "묵시적인 임대차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1986년부터 매년 쌀 80㎏짜리 4~10가마와 고춧가루 4㎏짜리 6관 상당을 이 이사장에게 보냈다.
이씨도 20년 이상 해당 건물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토지 일부를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1심 재판부는 "송씨는 매년 농작물을 토지 사용료로 지급했고 이 이사장은 소를 제기하기 전까지 토지 사용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등 임대차계약이 묵시적으로 체결됐다"며 "이씨도 이 이사장이 소유권을 가진 1985년부터 20년이 경과한 2005년 대지에 대한 점유권을 취득해 이 이사장은 철거 및 인도를 구할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