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정경화, 나윤선과 재즈 도전…편안하지만 품위는 잃지 않은

재즈계의 전설 냇 킹 콜(1919~1965)의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연주하는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67)의 바이올린 선율에 자유로움과 날카로움이 한껏 벼려졌다.

재즈스타 나윤선(47)의 리드미컬하게 흥얼거리는 스캣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정경화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몸짓에 흥이 깃들었다.

25일 밤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2016 평창 겨울음악제'의 오프닝 콘서트인 '재즈 플러스' 무대에서 정경화가 바이올린 인생 60년 만에 처음 재즈에 도전했다.

'어텀 리브스'의 시작은 정경화의 클래식한 바이올린 선율이었다. 이어 옥타브 뿐만 아니라 정해진 음정의 화음을 생성하는 하모나이저(harmonizer)를 통한 나윤선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보태지고, 나윤선과 9년째 호흡을 맞추는 기타리스트이자 '나윤선 콰르텟' 멤버인 스웨덴 출신 울프 바케니우스의 기타 소리가 보태지면서 점차 재즈의 옷을 입어나갔다.

나윤선의 본격적인 재즈 보컬이 더해지는 가운데 정경화의 바이올린도 재즈의 색을 마음껏 걸치고, 음과 음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이 곡이 끝난 뒤 나윤선이 "정경화 선생님이 계속 재즈를 해야 한다"고 말하자 정경화는 수줍어하면서도 활짝 웃었다.

정경화는 이날 총 재즈를 2곡 연주했는데 나머지 한곡은 바케니우스가 정경화의 연주를 듣고 영감을 받아 그녀를 위해 작곡한 '그랜디오소(grandioso)'였다.

제목에 '당당한'이라는 뜻을 머금은 만큼 평소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경화의 모습처럼 당참이 배인 곡이었다. 정경화의 연주는 한창 날카로웠지만 품위는 잃지는 않았다. 클래식 연주를 할 때보다 편안했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정경화는 그런데 이날 연주를 끝날 때마다 유독 수줍어했다. 평소 유쾌하고 무대 위에서 불꽃 같은 정경화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인데 연주를 할 때는 순간을 즐겼다. 그리고 몸짓으로 눈빛으로 이날 무대 주인공인 나윤선·바케니우스에게 거듭 공을 돌렸다.

나윤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 선생님과 같은 거장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는 드물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기(氣)가…(웃음). 여러분들도 느끼시리라 믿는다. 이날 무대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정경화는 이날 무대의 스페셜 게스트. 나윤선과 바케니우스는 정경화와 협업 무대를 중심에 두고 전후반을 재즈의 향연으로 가득 채웠다.

나윤선이 2010년 발매한 7집 '세임 걸'의 첫 번째 트랙 '마이 페이버리트 싱스(My Favorite Things)'를 그녀가 '엄지 피아노'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의 토속 악기 칼림바로만 연주하며 노래한 첫 순서는 클래식 팬들이 재즈의 세계로 편안하게 들어가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바케니우스의 기타가 마치 베이스 기타처럼 묵직하게 중심을 잡은 '언서튼 웨더', 웨스턴 스타일의 기타 연주가 비애감을 자아내는 '라멘트'는 재즈에 점차 익숙하게 만들었다.

바케니우스가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주로 겨울에 부는 춥고 거센 바람에서 제목을 따온 '미스트랄'은 나윤선 보컬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했다. 다양한 바람 소리를 흉내, 아니 구현해내는 그녀의 보컬은 몽환적이면서 관능적이었다.

바케니우스의 고향인 스웨덴 민요 '바람 없는 바다로의 항해'(Vem Kan Segla Forutan Vind)를 부를 때 나윤선은 시적인 노랫말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감성을 가득 끌어안았다.

나윤선이 나이지리아의 항아리형 드럼인 '우두 두럼(Udu Drum)'를 연주하며 들려준 냇 킹 콜의 '칼립소 블루스'는 평창에 찾아온 꽃샘추위와 눈을 녹일 만큼, 온기를 담뿍 담았다.

정경화와 협업 이후에 들려준 '강원도 아리랑'은 바케니우스가 편곡한 버전으로, 평창에 울려퍼져 색다른 의미를 더했다. 역시 하모나이저를 사용해 들려준 탐 웨이츠의 '자키 풀 오브 버번(Jockey Full Of Bourbon)'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록 보컬을 들려줬다.

앙코르 첫 곡은 클래식 음악축제인 만큼 클래식 곡으로 골랐다. 마치 재즈처럼 느껴지는 전위적인 음악을 선보인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gnossienne)'이었다. 물을 채운 와인 잔의 입술이 닿는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며 소리굽쇠의 울림처럼 느껴지는 소리를 덧붙이며 노래하는 나윤선은 관능을 넘어 클래식에 섹시한 요소를 덧댔다.

약 90분간 연주 목록은 모두 일품이었으나 앙코르 두번째 곡이자 마지막 곡인 '모멘토 매지코(momento magico)'가 절정을 찍었다. 나윤선의 목소리와 바케니우스의 연주는 마치 새가 날아다니듯 했다. 그렇게 제목처럼 '마법의 순간'이 펼쳐졌다. 평소 수줍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윤선의 굉음을 장착한 다채로운 목소리에 600명은 마법처럼 홀려 환호했다.

28일까지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과 용평리조트 그랜드볼룸에서 펼쳐지는 평창 겨울음악제는 아시아적 음악축제로 성장한 대관령 국제음악제의 겨울버전이다. 2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의 문화올림픽을 준비하는 취지다. 대관령국제음악제와 마찬가지로 첼리스트 정명화·정경화가 예술감독으로 나선다. 대관령국제음악제와 차별화를 위해 '재즈 플러스'라는 타이틀로 재즈를 아우르고, 나윤선을 첫 주자로 섭외했는데, 이날 공연은 열린 행보가 주효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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