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애국가 작사자 논쟁, 네 가지 허와 실

엊그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애국가작사자 안창호인가 윤치호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안창호가 애국가의 노랫말을 지었다고 주장하는 안용환 서울신학대 초빙교수,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맞섰다.

안용환 교수는 ‘애국가 안창호 작사의 타당성 16개항’, 김연갑 상임이사는 ‘애국가 윤치호가 작사자인 증거 10가지’를 밝혔다. 발제만 봐도 안 교수의 주관과 김 이사의 객관이 충돌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두 발표자의 160쪽 분량 논문집과 안 교수의 저서 ‘독립과 건국을 이룩한 안창호 애국가 작사’가 현장에서 배포됐다.

그 어느 학술모임보다 더 큰 관심을 끈 토론회다. 흥사단이나 순흥안씨(안창호)도, 윤치호기념사업회도 아닌, 제3자 격인 서울신학대가 주최했기 때문이다. 공정성이 담보된 듯했다. 그러나 주최측이 공언한 ‘끝장’ 또는 ‘맞짱’ 토론은 이뤄지지 못했다. 양측의 견해 차나 부당성을 지적, 쟁점을 부각시켜 해결토록 하는 상호공방 유도에 실패한 탓이다.

할당시간을 넘긴 김 이사를 향해 청중은 “그만둬라”, “왜 모자를 쓰고 하느냐”, “윤치호 용역이냐”라고 야유했다. 안 교수는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는 웅변조로 토론상대인 김 이사를 무시했다. 두 발표자의 논리를 요약해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는 길은 이렇게 봉쇄됐다. 벽, 평행선이었다.

매끄럽지 못하기는 발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이사는 구체적인 증거 제시에 매달리느라 ‘윤치호가 작사자인 10가지 증거’ 가운데 네 가지 정도를 공개하지 못했다. 안 교수는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물증을 한 건도 내놓지 못했다. 1897년 8월17일 서재필의 ‘편집자 노트’에 적시된 ‘계관시인 윤치호 작사 무궁화노래’를 반박한다면서 ‘제2의 무궁화가’ 가사라는 것을 설명하다가 말았다. 김 이사는 윤치호 작사 증거들을 앞세워 공세를 취했다. 안 교수는 안창호 작사 증거를 대지는 못했지만, 윤치호 작사 증거들에는 문제가 많다는 식의 수세적 자세였다.

토론회 직후 쏟아진 뉴스들 중 ‘제2의 무궁화가’가 안창호 작사설을 어떻게 입증하는 것인지를 알려준 것은 없었다. ‘제2의 무궁화가’가 안창호와 관련이 있는 문헌이라고 의심 없이 수용했다. 작사자명이나 시점 등이 기록돼 있지 않으므로 등가로 대비할 자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김 이사는 안창호 측의 ‘친일문제 부각’ 프레임을 차단하려는 듯 먼저 치고 나왔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로 결론 냈으면서도 문교부가 이를 확정하지도, 보고서로 내지도 않은 까닭은 애국가 개정 여론이 일세라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1904년 윤치호가 한일의정서에 대리서명했다는 사실을 특기, 방청석의 박수를 얻어냈다. 작사자 규명과 작사자의 이력은 별건임에도 안창호 측은 항상 이런 유의 대응패턴을 유지해 왔다.

토론회는 애국가 작사자 확정에 관한한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양측이 이런저런 주장을 했다’는 어떤 중립 관찰자의 시각만 반복했을 뿐이다. 이러한 교과서적 접근방식으로 애국가 작사자를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애국가와 후렴이 동일한 ‘무궁화노래’는 매우 중요하다는 전제조차 이해하지 못한 보도가 나왔을 지경이다. ‘제2의 무궁화가’가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증거일 수 있는가를 설명하거나 묻는 기사는 더더욱 기대난망이다.

결국, 기왕 멍석을 깐 서울신학대가 결과물을 낼 때까지 기획사업으로 계속하거나 행정자치부와 국사편찬위원회 등 나라가 나서서 양측의 허실과 사료 검증을 통해 정답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를 동원한 대중행사로는 진영논리를 깨지 못한다. 서지학자인 김 이사는 “무궁화가는 현 애국가의 원형이고, 1906~7년 작사된 애국가가 윤치호 작이라는 점과 61년 전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가 윤치호로 결론을 지었건만 문교부가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거듭 알린 것 말고는 성과가 없다. 윤치호가 친일파라는 말을 내가 한 것도 좌옹(윤치호)의 가족들에게는 송구스럽다. 내가 먼저 해서 상대가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라며 씁쓸해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누가 지었는지, 과거 여러 차례 확증했다. 토론회 현장을 전하는 글이기에 다른 말은 않겠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