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배우 이석준, 왜 '신과 함께 가라' 연출·제작하는가

 뮤지컬배우 겸 연극배우 이석준(44)은 지난해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화제가 됐는데, 특히 연극에서 주목 받았다.

이석준이라고 인지하지 않고 보면 깜빡 속을만큼 매번 다른 얼굴, 표정, 몸짓을 보여줬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고 여주인공인 중국배우 '송릴링'의 가녀린 외모와 우아함에 매료된 주중 프랑스 대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M. 버터플라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연쇄살인범 '랄프'(프로즌), 다소 무식하고 금방 속이 상하는 캐릭터인 '장창'(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은 한 배우가 연기하기 버거운 스펙트럼이다.

자기 학대가 심한 랄프를 연기할 때는 하도 자신의 뺨을 때려 턱 관절이 나갈 정도였다. 번갈아가며 뺨을 때렸는데도 이상이 생겨 양쪽 다 주사를 맞으며 공연을 버텼다. 극단 맨시어터의 우현주 대표는 "그렇게밖에 연기를 할 수 없냐"며 애정 어린 걱정과 함께 열정을 높이 샀다.

3부작 연극과 옴니버스 연극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3부작 물 '카포네 트릴로지'에서는 바로 앞 호텔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알지 못한채 쇼걸과 미스터리물에만 빠져 있는 어수룩한 경찰관 '바비',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 조직의 2인자 '닉 니티', 부하 직원이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를 같은 날 또는 하루 걸러 연기했다.

9가지 단편을 묶은 극단 맨시어터의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에서 모습은 더 다채롭다. 촌스럽지만 유쾌한 무명의 가수 '강심장'(러브 소 스위트),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화하는 것이 취미인 남자 '강일호'(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가 그였다.

이런 활약에 힘 입어 국내 최대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가 작년 한 해 최고의 티켓파워를 보여준 작품과 인물을 가리는 '2015년 골든티켓어워즈'에서 연극 남자배우상을 받기도 했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줬다.

이석준은 200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 뮤지컬로 작품 목록을 채워오다 2006년 연극 연출가 한태숙의 '이아고와 오델로'로 연극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깨달은 뒤 두 장르를 병행해왔다.

이석준은 "실제적으로 뮤지컬배우로서 살기는 했지만 연기적인 것을 추구해왔다"며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음악적인 멜로디보다 연기였다"고 말했다. "노래를 잘하는 배우라기 하기보다는 연기로 풀었다. 그래서 드라마가 강한 뮤지컬에 끌렸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이석준만큼 안정적으로 균형 있게 두 장르를 섭렵해온 배우가 드문 이유다. 연기 중심과 드라마가 강한 것에 끌리는 철칙을 지켜오며 무게추를 맞춰왔다.

연극은 작품성에 주력한 반면 뮤지컬은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갔다. 2004년부터 시작한 '뮤지컬 이야기쇼 이석준과 함께'도 그 중 하나다. 배우, 스태프, 관객과 함께 뮤지컬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형태의 이 프로그램은 뮤지컬 대중화의 주춧돌 하나를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즌2를 진행하던 지난해 6월 이후 잠시 쉬고 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이석준이 연출과 제작자로 나서는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는 그의 평소 신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국내 개봉한 졸탄 스피란델리 감독의 독일영화 '신과 함께 가라'가 원작이다. 2005년 이 영화를 본 직후부터 무대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만들고 싶었던 다섯 작품 중 하나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작가 이수진씨가 독일로 가 직접 감독에게 허락을 받았다. 이 영화가 뮤지컬로 옮겨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 '썸걸즈'와 우란문화재단 '시야플랫폼' 이후 다시 연출을 맡는다. '시야플랫폼'은 쇼케이스 형태였으니 공연 연출은 두 번째다. 하지만 창작 뮤지컬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썸걸즈'는 원작도 있었고 그가 오래전부터 출연해온 작품이었다.

 "'썸걸즈'는 연출을 한다기보다 도움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근데 '신과 함께 가라'는 2년 반 전부터 제작단계의 대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했다. 연출로서 두려움이 있다. 내게는 첫 연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뮤지컬화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선택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듯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분들에게 마음의 소리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 겹쳐진다. "배우로서는 내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 된다. 근데 연출은 바닥부터 시작해서 집을 완전히 지어야 하지. 배우일 때는 역에 대한 확신을 연출에게 물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확신을 줘야 한다. 내 믿음을 밀고 나가야 하니, 고민된다."

교회로부터 파문 당해 단 두 개의 수도원 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칸토리안 교단의 수도사 셋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수도원을 벗어나 세상을 경험하는 여정 가운데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유혹을 위트 있게 그린다. 일종의 로드 무비, 모험담, 그리고 성장담이다.

 "따듯한 공연을 만들고 싶다. 대학로에 그런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랑 이야기, 센 이야기가 많다. 공연이 가지고 있는 의무의 순기능 중 하나가 치유와 힐링이다. 다소 열린 결말이라 관객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도 좋았다." 남성 4중창의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 수도사들이 여행을 하면서 대중음악스런 넘버를 부르는 부분도 흥미를 끈다.

빔 프로젝터를 사용한 '프로젝션 매핑'으로 무대 전체를 꾸민다. "개인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것이 로드무비다. 그러면 계속 길을 가야 하고 장소가 변해야 한다. 그런데 배우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 주변을 바꾸기 위해 매핑을 사용한다. 힘들게 나아가는데 같은 자리를 머문다는 은유도 있고. '자신의 문을 여는 것이 진짜 나아가는 길이다'라는 마음도 담았다. (웃음)"

제작자로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5월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시범공연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5년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으나 제작비가 부족해 사비까지 내놓고 있다. "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있다. 여러 친분 있는 스태프들이 고맙게도 수퍼맨처럼 나타났다. 지금 예산으로 이 정도 규모의 작품은 못 올린다. 제대로 했으면 세 배 이상은 더 들어갔을 거다."

영화처럼 여러개 관에서 동시 개봉은 힘든 공연이어서 수익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선한 제작사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다. "좋은 공연을 성공시키는 구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

이석준이 생각하는 좋은 공연은 작품성과 함께 관객들과 접점이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인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텍스트가 이해하기 힘들면, 그걸 쉽게 풀 수 있는 연극적 문법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텍스트가 쉬우면 연극적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지. 그래야 관객들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석준은 공연의 경쟁 상대는 다른 공연이 아닌 TV, 스마트폰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은 이렇다'며 관객들과 접점을 만든데 실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계속해서 중간 다리를 놓아줘야 한다." 어린이 뮤지컬, 대중적인 뮤지컬, 실험적인 뮤지컬 등 세 단계보다 더 세분화된 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신과 함께 가라'를 연출, 제작하면서 수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석준은 "외국의 좋은 스태프 처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극단과 다른 형태로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특정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스태프들이 '어벤저스'처럼 모인다. 그런 형태의 협업도 한국에서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과 함께 가라'가 잘 돼야 한다. 이석준은 "힐링이 되는 작품인데, 삶에 쫓겨 힐링도 사치가 되는 이 시대에 관객들에게 보러오라고 하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뿐 아니라 무엇이든 그 가치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돼야 삶의 전반적인 행복 지수도 높아진다. 이석준이라는 이름에는 공연에 대한 믿음을 주는 신뢰가 깔려있다.

23일부터 3월6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벤로 서영주, 아르보 박한근·정휘, 타실로 이훈진, 키아라 김지현. 작곡가 류찬, 음악감독 구소영, 안무 김우정. 창작컴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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