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음식, 이것이 곧 화해와 소통…연극 '방문'

'쿡방'이 방송을 집어삼키고 있다. 무대 위에는 진작부터 음식과 요리는 단골손님이었다. 공연장 안에서 배우들이 조리를 하고 음식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관객의 시각·청각은 물론, 오감이 극에 사로잡힌다.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의 지글지글 구워지는 곱창 냄새는, 경계에 선 재일 한국인들의 아픔을 그나마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뮤지컬 '심야식당'에서는 음식 자체를 빼놓을 수 없다. 신주쿠 뒷골목에서 간판도 없이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운영되는 작은 식당에서 위로 받는 이들의 이야기다. 비엔나 소시지, 계란말이, 버터 라이스 등 원작 심야식당에서 소개된 음식들이 실제로 요리되고 선보일 때 극 중 배역뿐 아니라 관객들도 음식과 관련한 추억 속에 잠긴다. 

꿈과 열정이 사라진 386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돐날'에서도 음식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요 동력이다. 30대 중반인 지호·정숙 딸의 돌 잔칫날에 친구들이 모인다. 실제로 전을 부치고 갈비찜과 잡채, 나물 등이 무대 상 위로 올라온다. 사실적이고 향수를 자극한다. 이 음식들이 동이 나면서 지호, 정숙의 갈등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처럼 무대 위 음식은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극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감정선을 대변한다. 

최근에는 연극 '방문'이 대표적이다. 미국에 살던 '진영'이 한동안 소통 없이 지낸 형인 목사 '진석'의 급한 연락을 받고 7~8년만에 집으로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연로한 아버지가 없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식사준비로만 부산하다. 

'방문'은 여러 갈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동네 교회의 원로목사인 아버지와 은퇴한 담임목사인 형은 아픔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다. 가정이 점차 붕괴하는 신호다. 이로 인해 교회의 부목사, 권사 등 이웃들과도 오해가 쌓이고 갈등은 점차 커진다. 

음식이 그런데 소통의 구심점 역을 한다. 소금뿐만 아니라 설탕까지 번갈아가며 재운 돼지고기의 목살 부분이 오븐에 점차 구워지고, 냄새가 점점 객석까지 퍼질 때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화해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 식탁에 둘러앉은 인물들이 얇은 빵 위에 고기 한두점을 넣고 여러 채소와 소스까지 얹어 싸 먹을 때, 인물들 사이의 해묵은 감정까지 저 밑으로 내려간다. 

음식을 정성스럽게 함께 준비하고 같이 나눠 먹는 과정이 곧 화해에 이르는 길과 같다는 걸 증명한다. 음식은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걸린다. 인간 관계와 소통 역시 마찬가지다. 

2015 연극 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 시범공연지원 선정작이다. 2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배우 이호재, 김승철, 김정호, 김성미, 강진휘, 이서림, 김기범. 연출 박정희, 작가 고영범, 무대디자인 여신동. 러닝타임 100분. 3만원. 마케팅컴퍼니 아침. 02-5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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