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칼린, 배우이기도 하다는 사실…뮤지컬 '넥스트투노멀'

뮤지컬 음악감독, 공연 연출가 등의 온갖 직함은 필요 없게 된다. 박칼린(49)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녀는 오롯이 배우다. 

1980년대 배우로 활약하다가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박칼린이 1991년 현대극단의 연극 '여자의 선택' 이후 2011년 라이선스 초연을 통해 20년 만에 다시 배우로 나서게 만든 작품이다. 2013년 재연과 이번 세 번째 시즌까지 '다이애나'를 연기한 그녀는 한층 캐릭터 해석력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구현하기에 바쁘다. 점차 무르익어서 단추를 잘 끼게 된 것 같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협업도 마찬가지고. 움직일 때마다 이유가 있는데, 전에도 물론 알고는 있었다. 몸에 배어 있지는 않았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굿맨 가족들의 아픔과 화해, 그리고 사랑을 노래한다. 미국의 브라이언 요키(작가)와 톰 킷(작곡가)이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그해 토니상에서 최고음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3개 부문을 차지했고 특히 2010년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받았다. 

다이애나는 매력적이고 총명하지만, 다소 예민한 엄마이자 아내이다. 무엇보다 그녀 안에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 이로 인해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간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어머니다. 연기하기 결코 쉽지 않다. 

"다이애나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선을 오간다. 배우로서는 그 극과 극을 연기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평범함, 그 언저리'(넥스트 투 노멀)가 어떤 것인지, 그 끝과 그 끝을 제대로 표현한 건지, 과장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있었다. 다이애나를 잘 대변한 건지 미안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고."

점차 박칼린이 표현할 수 있는 다이애나의 선에 근접해갔다. "나는 사적인 것에 쿨하고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사적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공적으로 허튼짓, 예를 들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심한 말도 거침없다. 근데 실수로 차를 박살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안 다쳤니'라고 걱정을 먼저 하지. 이런 점들을 빌려와서 다이애나를 연기하려 했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가장 슬펐던 때는 언제지?' '내가 가장 미쳐보이게 행동했던 것은 뭐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매번 정신적인 에너지 소비가 어마어마할 듯하다. "공연을 시작하면 이번 회가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하자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우리가 느끼는 것을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지. 그러니 공연이 끝나도 쉽게 다이애나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차로 집에 돌아가는 내내 '넥스트 투 노멀' 넘버들을 나도 모르게 절로 부르게 된다. 그러면 서서히 벗어나더라. 집에서는 절대 일과 관련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양이랑 논다. 음악도 절대 안 듣고 일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하지만 깨끗이 분리하려 한다."

다이애나는 무엇보다 노력하는 캐릭터다.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다이애나는 무엇보다 16년 동안 노력을 해왔다. 제일 큰 결정이 가족을 떠나기로 한 결심이다."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된 아들 '게이브', 이로 인해 점차 멀어진 딸 '나탈리'와 화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순간, 다이애나는 '과거를 보내고 오늘을 살면, 그 때 널 볼 수 있겠지'라고 노래한다. "다이애나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뮤지컬은 주로 꿈, 판타지를 노래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노래하는 '넥스트 투 노멀'이 그래서 낯설 수 있다. 새로운 어법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트렌드에는 벗어나 있다.

그런데 노랫말이 이처럼 명확하게 들리고, 관객들이 스토리 라인에 빠져서 쫓아가는 경우의 작품도 드물다. 멜로디의 유려함에 젖어 이야기를 덜 중요히 여기는 작품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음악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먼저다. 작가보다 작곡가의 이름이 앞서지 않나. 뮤지컬은 음악보다 스토리로 먼저 감동을 줘야 한다. 음악으로 감동을 받는 건 나중이고, 스토리 전달이 먼저다. 그러니 장면마다 노래를 하면 안 된다. 가사를 불러야 하는 거지."

뮤지컬은 드라마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트렌드를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위해서도 '넥스트 투 노멀'은 필요한 작품이다. 쉽지 않은 소재를 재미있게 풀었다. 함정에 빠지기 쉬운 록 음악을 빤하지 않게 사용했고, 유머와 메시지, 거기에 가족의 사랑까지 담았지."

초연 당시 낯설어하던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도 점차 입소문을 타며 이전 시즌에 비해 흥행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이번이 세번째인데, 우리는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나. 호호. 이런 작품을 대담하게 이끌고 가는 제작자(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 박용호 프로듀서), 이를 지원해주는 회사에 대해 배우뿐 아니라 뮤지컬계 스태프 중의 한사람으로서도 고맙다. 이런 작품이 있어야 한국 뮤지컬계가 좀 더 풍성해진다."

박칼린은 2010년 KBS 2TV '해피선데이'의 코너 '남자의 자격'에서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에 나와 '남격 합창단'을 이끌면서 대중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그녀의 리더십에 많은 대중이 열광했다. 박칼린은 그럼에도 꿋꿋했다. '넥스트 투 노멀'에 출연하는 등 흔들림 없이 '라이브 무대'에서 더 많은 활동을 이어갔다. 음악감독을 하든, 연출을 하든, 배우를 하든, 가사를 쓰든, 라이브 무대라는 한 우물을 파온 셈이다.

"이 작품은 의상, 이 작품은 음악감독, 이 작품은 가사를 더 잘 쓴 것 같으면 그리해왔다. 연기는 '넥스트 투 노멀'이니까 하는 거다. 다른 작품에서도 배우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다' 연출을 맡은 건 음악감독이지만 연출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나 역시 다른 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빅밴드가 좋아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것이고. 정말 음악이 좋은 뮤지컬 '노트르담의 꼽추'를 다시 한다면 절대 연출은 안 하고 지휘봉을 들 것이다."

박칼린 감독의 올해 '라이브 무대'에 대한 열정은 절정에 달할 듯하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서태지의 음악을 입힌 '페스트'(7월 LG아트센터 예정)의 초연을 연출한다. 앞서 창작 뮤지컬계 기대주인 작가 전수양(35)과 작곡가 장희선(34)의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23일부터 3월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1관)의 연출도 맡는다. 특히 전 작가와 장 작곡가는 박칼린의 제자이기도 하다. 

입양 청년의 여정을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 공연계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난 뮤지컬이다. 2013년 12월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 제작발표회, 2014년 2월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 쇼케이스, 201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뮤지컬 시범 공연 등을 통해 2년여 간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거쳤다. 프로 무대 정식 공연을 앞두고 있다. 

'나는 어떻게, 어디서, 왜 태어났을까?'라는 뿌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국을 찾은 입양 청년 '조씨 코헨'이 주인공이다. 우연히 들어간 이태원의 바에서 만난 게이 할아버지 '딜리아'와 함께 생모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입양아의 이야기는 당연히 신파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뜨린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면서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에 충실하고, 재기발랄함이 조화를 이룬다.

"'에어포트 베이비'는 초안이 너무 괜찮았다. 이후 둘이 계속 수정하면서 더 탄탄해졌지. 내가 새로 해석하거나 더 건들 건 없다. 잘 파악해서 흐름을 깨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내 할일이다. 이 작품의 연출로서 장점은 딱 하나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 (웃음) 빈 두 마디의 전주 음악, 간주 음악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거다."

박칼린이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국내 1호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에어포트 베이비'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뮤지컬을 선보이는 것이라 관심을 끈다. 

"두 사람이 '에어포트 베이비'를 내놓기 위해 몇년 동안 공부를 했다. 한국 문화가 있어서 우리가 이 국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명작이라는 건 국경이 없다. 판소리처럼 나라 고유의 것을 이야기해도 공감이 된다. 오래 걸리더라도, 이 친구들이 제대로 배웠으면 했다. 뮤지컬 어법이 무엇인지 알고 좋은 글, 좋은 곡을 쓰기를 바랐지. 트렌드적인 작품은 금방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공부한 이들이 내놓은 것은 오래 간다고 믿는다."

'넥스트 투 노멀' 역시 박칼린의 그러한 마음이 담겼고, 점차 한국 뮤지컬에서도 그런 어법이 통용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작품이다. "점차 좋은 작품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뿐만 아니라 대본, 세트, 조명 등을 다합친 스태프들의 노고와 스토리텔링을 보게 되는 거지. 뮤지컬은 3, 4년 동안 대본 만들고 편곡하고 세트를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의 중요성에 조금 더 박수를 쳐주는 분들이 늘어날 거라 믿는다."

3월1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다이애나 박칼린·정영주, 댄 남경주·이정열, 게이브 최재림·서경수, 나탈리 오소연·전성민·전예지, 헨리 안재영·백형훈, 의사 임현수. 프로듀서 박용호·유주영, 연출 변정주. 러닝타임 14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6만6000~8만8000원. 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프레인글로벌. 02-3210-9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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