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소담, 그녀에게 홀리면 뱀파이어처럼 생기가 돈다

영화배우 박소담(25)은 연극 '렛미인'에서 온몸으로 연기한다. 뱀파이어인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절규하면서 몸부림을 친다. 소녀와 뱀파이어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의 감정을 토해낼 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진동한다.

활동량이 좋은 뱀파이어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무브먼트'가 필수다. 나무와 정글짐을 척척 오르는 등 능숙하게 소화해 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박소담은 프로 연극 데뷔작인 '렛미인'이 체력적으로 힘들 법한데 "무대에 올라 또 한번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아마추어 연극까지 합하면 그녀가 무대에 오른 건 2년3개월 만이다.

지난해에만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베테랑' '사도' 검은 사제들' 등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대세 여우'로 떠오른 박소담은 프로 연극무대에서도 이름값을 하고 있다.

 "연습실에서보다 바닥에 더 몸이 밀착해서 구르거나, 몸을 쓰는 장면이 더 많다. 근데 몸을 많이 쓰고 더 구를수록 아름다운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서운 장면인데, 몸 쓰는 것으로 인해 눈발이 휘날리니 더 풍부해지는 것이다."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과 스웨덴 영화감독 토머스 알프레드슨(5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렛미인'(2008)이 바탕이다. 2010년 할리우드 버전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결손 가정의 외로운 소년 '오스카'의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그렸다.

연극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제작하고 역시 동명영화가 바탕인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올리비에상을 받은 존 티파니가 연출했다. 이번이 한국 초연으로 라이선스 연극에서 드물게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다. 원작 프로덕션의 모든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공연 형태로 균일한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티파니가 연극 개막 때까지 매만지고 갔다.

 "티파니 연출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우리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떠났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연기할 수 있는 이유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유다." 눈(雪)을 휘날리는 인물들의 씨줄의 동선은 무대를 빼곡히 채운 나무들 날줄의 수직성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눈(目)을 황홀케 만든다.

일라이는 '렛미인'(들여보내줘)라고 초대를 받아야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신에게 토라진 오스카가 그 말을 하지 않자 몸을 꿈틀대는데, 겉보기에는 아무런 장치 없이 온몸이 피범벅이 된다. 박소람이 쉬지 않고 온몸의 구석구석을 움직여야 가능한 기술이다.

또 영화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스펙터클의 힘을 보여준 장면인 수영장 신은 정글짐 뒤편에 감춰뒀던 수조에 돌연 물을 채워 연출한다. 오스카를 괴롭히는 이들을 일라이가 사살하는 이 장면에서, 박소담은 동선은 이동하지만 현란한 조명보다도 더 빠르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오스카를 살려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온몸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장면이다. 오스카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잔인하지만 오스카와 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분위기로 이어지기 위한 격정도 함께 뿜어야 한다. 일라이도 고통스러울 것 같은 장면이다. 힘으로만 가는 것이 아닌 처절함도 함께 보였으면 했다."

차갑고 도도해보이던 일라이는 오스카를 점점 만나면서 점차 소녀로 변해간다. "일라이 또한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인간과 감정을 교류해나가고 싶어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피를 마시고 완전체가 됐을 때는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지만, 상처를 받은 누구보다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일라이도 센 척을 한다. 그러나 "오스카를 겪은 이후로 긴장감이 풀리면서 소녀 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나. 그런 지점에서 일라이도 많이 외로웠고, 오스카도 많이 외로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한 사랑이 아닌 서로의 치유로써 안아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 기차 신, 일라이와 오스카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난다. 오스카는 트렁크 속에 있는 일라이에게 사랑으로 추정되는 모스 신호를 보낸다.

오스카는 일라이가 한 때 사랑했으나 이제 더 이상 마음이 동하지 않는, 늙어버린 하칸의 젊었을 때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일라이는 여전히 지금 그 모습일이 테지만 오스카는 하칸처럼 늙어버릴 것이다.

박소담은 그러나 "해피엔딩"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두 사람의 앞날은 험난할 지는 모는다. 근데 지금은 둘이 함께 하기에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싶다. 많이 힘들었던 두 인물이 손을 잡으면 그래도 힘을 얻고 살아간다고 믿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일을 겪을 지 걱정이고, 하칸 만큼 못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은 것이 지금의 마음이다." 극중 캐릭터를 부정으로 미리 재단하기 보다는 열린 마음의 긍정으로 응원해주는 마음에서 캐릭터에 대한 박소담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의 연기를 본 관객들이 하얀 뱀파이어가 붉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생기가 도는 이유다.

2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일라이 박소담·이은지, 오스카 안승균·오승훈, 하칸 주진모. 프로듀서 박명성, 극본 잭손, 연출 존 티파니, 국내 협력연출 이지영, 무브먼트 디렉터 스티븐 호겟, 음악 올라퍼 아르날즈, 무대 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 조명 디자이너 샤인 야브로얀, 음향 디자이너 가레스 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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