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간문화재' 강선영 별세, 향년 91…'한국무용의 역사'

중요무형문화재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인 강선영(91) 여사가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5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무용의 살아 있는 역사로 통했다. 13세부터 한국 춤의 전설 한성준(1874∼1941)에게 배웠다. 그에게 춤을 배운 유일한 생존 무용수였다.

1950~60년대에는 '법열', '초혼', '열두무녀도', '원효대사' '농부와 선녀' '수선화' 등 전통 춤을 넘어 창작춤을 이끌었다.

특히 한국춤을 세계 무대에 널린 알린 주인공으로 평가 받는다. 1950년대 강선영 고전무용연구소를 세운 고인은 1960년 5월 파리에서 열린 '제5회 국제민속예술제'서부터 본격적인 해외 공연을 시작했다. 무용가뿐 아니라 이생강 등 국악연주자, 안나영 등 영화배우 수십명이 참가했다. 대규모로 국제행사에서 한국을 알린 건 그때가 처음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강선영에게 해외공연의 러브콜이 잇따랐다. 2006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한국 전통무용을 처음 선보이는 등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획을 그었다. 링컨센터 공연에 대한 평이 '타임'에 실리기도 했다. 170여개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했다. 한국 무용가 중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한 기록이다.

1988년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88 서울올립픽홍보사절단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 전수관을 설립, 전통춤 보급에 힘썼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제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춤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국민훈장 목련장(197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5) 등을 받았다.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다.

특히 88세 때인 2013년 강선영춤보존회 주최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강선영 춤인생 80년'을 기념하는 무대의 피날레서 '태평무' 무대에 등장하는 등 노년까지 춤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항상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끝까지 프로다운 모습도 잃지 않았다.

장례는 한국무용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무용 의상디자이너인 딸 이남복 씨를 남겼다. 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25일 오전 7시. 02-207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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