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류장현, 원류 찾다보니 결국 굿…무용 '칼 위에서'

개성 강한 이들로 넘치는 현대무용계에서도 안무가 류장현(33)은 독보적이다. 부풀린 머리는 실험에 몰두하는 박사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밑에 기른 턱수염은 예술가의 면모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몸을 써야 하는 춤 추는 사람이라는 걸 반영하듯 생각과 정신이 열정적이다. 거기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으니 사회운동가 같기도 하다.

류장현은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무용단과 손잡고 신작 '칼 위에서'(20, 22, 23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를 다듬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의뢰를 받은 류장현은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뇌'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굿을 떠올렸다. 특히 원시성과 생명력을 톺아봤다. 굿이야말로 한국무용의 원형이라 본 것이다. 현대인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무당이 작두를 타기 위해 칼 위에 올라가 있는 장면을 봤다. 그래서 제목이 '칼 위에서'다.

"먼저 생각을 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형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작품의 시의성을 따지면, 한자 무당 무(巫)를 떠올렸다. 하늘과 땅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이 있고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기둥이 있고. 이 한자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듯했다."

'칼 위에서' 서 있는 장면은 무당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이라고 봤다. "니체의 말도 한 몫했다. 인간은 줄 위에서 휘청거리는 존재라는 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위험한 거지. 흔들리는 것이 인간이다. 또 사람들이 인정 사정 없이 다른 사람들을 밟고 서는 것이 칼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낼 정도로 모두들 날이 서 있기도 하고."

굿을 형상화한 바탕에 무용수들의 즉흥적인 테크닉이 몸짓에 녹아들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정해진 틀이 있는 한국무용의 자유로움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류장현은 "사람들의 맺힌 부분을 풀어주는 것, 그에 대한 자유로움을 표현한 부분도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처음에는 "억울하게 죽지도 못하고, 눈을 떠도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위안부 피해 소녀들, 주름이 많은 소녀들, 긴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비극 말이다. 굿을 공부해나가면서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이 굿도 박해한 사실을 깨달았다." 무용 외적인 부분을 문화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이 류장현의 고민이자 특징이다.

그래서 함께 하는 무용수 13명과 함께 토론을 벌이는 것이 류장현에게는 즐겁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연습실에서도 그는 무용수들과 틈틈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몸과 몸이 부딪히기 전, 생각과 생각이 먼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작업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즐겁고 효율적이었으면 한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열명의 아이디어를 모을 때 다른 것이 나온다. 평소에도 스마트폰 그룹 메시지 창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우선 과정에 만족을 해야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른다." 음악 윤용준, 무대 여신동, 조명 조성한, 의상 배경술 등 해당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을 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칼 위에서' 도중에 흰 커다란 도화지 위에 동시에 그림도 그린다. 대걸레와 페인트 등을 사용할 예정이다. "낙서, 그래피티 등을 떠올렸는데 특히 대자보의 이미지을 차용하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대자보에 쓰여 있던 글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약자들의 마지막 일기라고 해야 할까, 페이스북에 끄적이는 것일 수도 있고. 오방색을 써서 굿의 전통을 표현해보고 싶다."

류장현은 국립무용단과 가장 많이 작업한 현대무용 안무가로 이번이 네 번째다. 2007년 '보둠어 가세!'에서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1931~2012)을 조명했다. 만 25세이던 2008년에는 최연소 객원 안무가로서 배정혜(71)·국수호(68) 등 한국무용계의 쟁쟁한 안무가들과 함께 '코리아 환타지Ⅲ-밀레니엄 로드'를 작업하기도 했다. 2010년 어린이 공연 '프린세스 콩쥐'에서는 조안무로 활약했다.

류장현은 국립무용단과 함께 작업하면서 "동작 등의 박제된 것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무용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춤 추는 사람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면 스트리트 댄스, 방송 댄스도 할 수 있다.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과 몸이) 열릴 수 있다. 그런 틀을 깨려고 다양한 음악으로 접근하려 한다."

한국무용은 한국음악에 얹혀 있다. "한국 무용은 우리 장단에 맞춘 춤이다. 인도 춤이 인도 음악에 맞춰 춘 춤이듯. 근데 그 음악의 흐름을 따라 원류를 찾아가는 끝에도 굿이 있다. 그 지점에서 원시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 거지. 결국은 원류를 찾는 작업이다."

음악적인 면에서 굿 형식을 취하려다 보니 그것마저 형식에 갇히게 됐다. "타악 위주로 가려는 걸 무시하니 그 때 열리더라. 현대는 카오스다. 명문대 나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유명인이 된다. 무슨 음악이 나오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에 배정혜, 국수호 같은 거물 무용가 틈에 서 있다 보니 자신의 것을 오롯하게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류장현은 7~8년이 지난 지금 "조금 더 능글맞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단원들이 만들어놓은 것에 밥 숟가락을 얹기도 하고. 하하."

류장현의 세상에 대한 고민은 진작부터였다. 2006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자신이 안무한 '지워지지 않는 이름…위안부'로 현대무용 부문 금상에 이어 전체 대상까지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LIG 아트홀 상주안무가로 활동하면서 '피아노' '드렁큰 루시퍼' 등의 무용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갓 잡아 올린 춤'은 2012년 초연 후 2013년 현대무용으로서는 드물게 8회 장기공연에도 불구하고 매진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연출한 국립극단의 '비행소년 KW483'의 움직임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장르의 구분, 활동 영역의 한계가 없다.

어렸을 때 명동 등 번화가에 나가면 음악이 울려퍼지는 대형 스피커 위에 올라가 춤을 췄다는 그는 흥이 많다. 계속 그 흥 때문에 춤을 췄고, 덕분에 아웃사이더가 됐다. 하지만 대학 무용과(세종대)에 들어가 인사이더가 돼 "귀한 이들이 있는 곳에서 천한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혹자는 내 춤을 보고 한국적이라고 한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유희성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인류학자가 말하지 않았나, 한류문화의 에너지가 무속 원류의 에너지라고. 그 중심에는 놀이성이 있는 것 같다."

흥과 놀이성은 '칼 위에서'처럼 결국 고민거리를 품은 몸짓으로 승화한다. "내게 춤은 누군가를 위해서 몸으로 하는 기도다. 계속 공부하면서 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선동적이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시적으로 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칼 위에서'는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기본활용법'(21, 23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과 교차 공연한다. '기본활용법'은 국립무용단 주역 무용수 조용진의 첫 안무작으로 2014년 초연했다. 러닝타임 60분(중간휴식 없음). 3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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