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검은사제들 그녀 박소담, 연극 '렛미인'에서는 뱀파이어

이상한 일이다. 배우 박소담(25)은 진지했는데 즐거운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연극 '렛 미 인'(원제 렛 더 라이트 온 인) 라이선스 첫 공연이 그녀에게 긍정적 기운의 엔진이 됐다.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박소담은 "떨리지만 열심히 해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 영화계 '괴물신인'은 연극계 첫 소풍에 대한 설렘에 눈빛이 총총했다. 정글짐에서 갑자기 뛰어내리고,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등 '무브먼트'가 강조되는 연극이라 힘들 법도 하다. 그러나 잠깐 숨을 돌리는 틈에도 다른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를 좇느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는 쫑긋 세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나온 그녀는 대학 시절 소극장 연극에 여러번 출연했으나 프로 연극은 이번이 데뷔무대다.

'렛미인'은 더구나 올해 공연계 최대 기대작이다.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과 스웨덴 영화감독 토머스 알프레드슨(5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렛미인'(2008)이 바탕이다. 2010년 할리우드 버전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결손 가정의 외로운 소년 '오스카'의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그렸다.

연극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제작하고 역시 동명영화가 바탕인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올리비에상을 받은 존 티파니(45)가 연출했다. 2013년 스코틀랜드 던디 렙 시어터에서 초연한 최신작이다. 영화의 북유럽을 닮은 '창백한 서정성'을 그대로 옮겨온 연극은 "절묘하게 아름답다"(더 가디언)라는 평을 받았다. 하얀 피부에 쌍꺼풀 없이 깊은 눈을 지닌 박소담의 눈빛과 미소 역시 북유럽을 닮았다. 그녀가 일라이다.

올해만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베테랑' '사도' 검은사제들'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대세 여우로 떠오른 박소담은 "학교를 다닐 때는 연극을 많이 했는데 관객들을 직접 만나 떨림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600여명이 지원한, 2주 간의 오디션을 통해 최종 11명에 뽑혔다.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크고 좋은 작품이 초연된다고 들으니 일라이 역에 도전의식을 느꼈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몸을 풀어야 하는 웜업이 힘들기도 하지만 박소담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일 뿐이다. "오디션 2차가 무브먼트였는데 학교 때 움직임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분들과 다 같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하니 카타르시스가 올라오더라. 오디션에 떨어져도 다시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다."

서로 밀치고 함께 구르는 등의 장면이 많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같이 웃고 소리를 내면서 호흡이 느껴지는 순간, 서로 믿음을 심어주게 되더라. 많이 웃고 즐기고 있다. 우리가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공연이기도 하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상대방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교감이 중요한 작품이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당연히 있다. "연극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서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돌발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영화는 눈썹 하나를 찡긋하거나 사소한 것, 표정 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연극은 모든 것이 확장이 돼야 하다 보니 더 많은 에너지를 내야 한다."

겉은 평범한 소녀의 모습인데 실상은 뱀파이어다. "관객들이 '쟤는 뭐지'라며 이상하게 느낄 요소가 있다. 박소담이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면 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노력 중이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어 첫 연극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이목을 사로잡은 영화 '검은 사제들'의 두 선배(김윤석·강동원)에게 느끼고 배운 것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야 책임감을 가지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부담감을 좋은 부담감으로 바꾸면서 노력을 해왔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관심을 받을 줄 몰랐는데 즐기면서 하니까 좋은 결과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대가 떨리지만 떨려하지 않을만큼 열심히 해서 즐기는 모습을 역시 보여주고 싶다. 또 다른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다."

2012년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인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08-블랙 워치(Black Watch)', 지난해 라이선스 초연과 오리지널 팀 내한공연한 '원스'로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는 티파니 연출은 "연극화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어떤 부분을 뺄 수밖에 없다"며 "일라이, 오스카, (오랜기간 일라이를 돌봐온) 하칸의 삼각 관계를 중심으로 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티파니는 올해 여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는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연출도 맡았다. 조앤 K 롤링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이 작품 역시 영화로 옮겨져 세계적인 흥행성공을 거뒀다. 연극의 '헤르미온느' 역에는 흑인 여배우 노마 드메즈웨니가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침대가 불타오르는 등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은 빼고 극작으로 최대한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려 했다. 연극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했다. 두 명(일라이·오스카) 때문에 극도로 공포감을 느끼면서 아슬아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난해 말 세 번째 내한 공연을 하고 간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올라퍼 아르날즈가 음악을 맡아 눈길을 끈다. 네오 클래시컬, 미니멀리즘 등으로 설명되는 아르날즈의 음악은 북반구의 바로 깨질 듯한 얼음장 같은 서정성을 표현하기에 제 격이다.

"무브먼트 디렉터인 스티븐 호겟이 극에 어울릴 것 같다며 아르날즈의 음악을 추천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추위와 얼음의 느낌이 살아난다."

'원스'에 이어 티파니와 작업하게 된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번쩍이는 연출"이라고 소개했다. 오스카는 학교에서 소외되는 소년인데 "대한민국 학교에서도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꿈과 희망을 짓밟히는데 그걸 잔잔하게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알렸다.

'렛미인'은 특히 한국 라이선스 연극에서 드물게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다. 원작 프로덕션의 모든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공연 형태로 균일한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렛미인'은 뱀파이어가 등장함에 따라 피가 흥건해지는 등 특수효과가 많아 레플리카 프로덕션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박 대표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특수효과 등을 통해 한국 무대에서도 저런 특수효과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바랐다.

신예 이은지가 박소담과 함께 일라이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긴 생머리에 처연한 표정이 일품이다. 일라이와 함께 작품을 이끌어 갈 오스카 역에 역시 신예 안승균과 오승훈이 낙점됐다. 일라이에게 피를 공급하며 순애보를 펼치는 하칸은 중견 주진모가 맡았다.

신시컴퍼니와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한다. 21, 22일 프리뷰를 거쳐 2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극본 잭손, 연출 존 티파니, 국내 협력연출 이지영, 무브먼트 디렉터 스티븐 호겟, 음악 올라퍼 아르날즈, 무대 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 조명 디자이너 샤인 야브로얀, 음향 디자이너 가레스 프라이. 3만3000~7만7000원. 신시컴퍼니. 02-57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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